[황순원 문학상 후보작] 김원우 '무병신음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김원우씨 문학은 저작의 독서를 요구하는 반성적 탐구의 문학이며 평균 독자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지적 난해성의 문학이다.

김씨 문학의 이런 특성은 스스로를 일반 독자로부터 오연히 소외시켰다. "염상섭을 좋아하는 문학청년은 없다"는 말은 그대로 김씨의 문학에도 적용된다. 김씨의 문학은 어른의 문학이다.

권위적 화자의 지적 언어의 주도로 빈틈없는 한 세계를 구축하는 김씨 소설의 매커니즘은 작금의 우리 소설에 뚜렷한 연성(軟性) 편향에 대한 거부이며 잡다한 세태의 지리멸렬한 나열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 소설의 세태소설적 경향에 대한 비판이다. 어제오늘 우리 소설에 대한 강력한 반명제(反命題)의 실천인 것이다.

새 직장을 따라 대구로 이주한 뒤 몇 년간 뜸하더니 중후한 중편 '무병신음기(無病呻吟記)' ( '21세기문학' 2001년 여름호) 로 '한 소식' 보내왔다. 지난 몇 년은 이 작품을 위한 시간이었던 듯 더 넓고 깊어졌다.

'무병신음기' 의 핵심 전언은 '사람이니까 앓는다' 이다.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앓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이런 경우엔 앓아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하는 것과 '사람이니까 앓는다' 라는 말 사이에는 결코 건너뛸 수 없는 아득한 거리가 가로놓여 있다. 앞의 말이 확고한 기준에 근거한 구별과 배제의 논리구조를 지닌 것이라면 뒤의 것은 그 이전 또는 이후에 자리하는 것이다.

확고한 기준에 근거한 구별과 배제의 논리구조를 떠남으로써 앓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 일반의 보편성에 나아갈 수 있는 시야의 트임, 그런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의 마음 열림이 가능해질 수 있었다.

인간 존재의 보편성을 향해 열린 것이라 해서 이 작품이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인간 존재의 보편성에 대한 열린 시각은 절뚝걸음으로 나아온 우리의 근현대사와 그 속을 낮은 포복으로 헤쳐온 사람들의 상처투성이의 삶에 대한 정밀한 재현, 그 또한 그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겸허한 자기 인식과 이에서 생겨난 자기반성적 성찰과 맞물리며 깊고 넒은 세계를 구축한다.

주인공의 자기반성적 성찰은 자기자신만을 문제삼는 한정된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의 자기성찰은 그 또한 이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에 빈틈없이 얽매인 한 구성분자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의 삶의 세목들이, 그의 눈길 가닥가닥이, 그의 사고 줄기줄기가 그 질서에 깊이 침윤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그이면서 그가 아닌 것이다.

『김원우중편소설전집』(프레스21)이 대표하는 김원우 문학의 주인공은 대체로 강한 자기 믿음 위에 서서 대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머무르는 특성을 보였다. 김씨 문학의 뚜렷한 현실비판성은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병신음기' 의 주인공은 이에서 벗어나 있으니 김원우 문학의 새로운 경계 열림을 예감케 한다.

'무병신음기' 의 주인공은 지방대학 국제학부에 소속된 중년 교수다. 대상을 대하는 그의 눈길, 마음 움직임, 그것들을 드러내는 그의 언어는 섬세하면서도 적확한데 이 작품을 좋은 작품이게 하는 요인의 하나는 이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주제의 중후함에 짓눌려, 새길수록 맛있는 김씨 문학의 이 숨어 있는 속살을 지나치고 만다.

김씨 소설에 올바르게 다가가는 통로의 하나는 그 섬세함과 적확함을 바로 보는 것이다.

정호웅 <문학평론가.홍익대 교수>

*** 김원우(金源祐) 약력

▶1947년 경남 진주 출생

▶77년 '한국문학' 에 임지 당선 데뷔

▶소설집 『무기질 청년』 『짐승의 시간』 『세 자매 이야기』 등

▶한국창작문학상.동인문학상.동서문학상 등 수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