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스탈린 고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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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바르샤바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37층짜리 문화과학궁전에서 근무하는 사람. 왜? 흉물스러운 그 건물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폴란드의 농담이다.

이 건물은 높이가 2백34m로 시내 어디에서나 보인다. 하지만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우람한 모습이 밉상스러운 데다 소련 독재자 스탈린이 선물한 것이어서 대다수 시민들이 싫어한다. 스탈린 사후인 1955년 완공된 이 건물은 소련의 힘을 과시하며 폴란드를 압박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 건물은 서방에서 '스탈린 고딕' 이라고 부르는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첨탑이 여기저기 달려 위압감이 느껴지는 것이 중세의 고딕양식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높고 거대하며 좌우대칭을 이루면서, 가운데로 갈수록 높아지는 형태다.

30년대에 스탈린의 명령으로 설계돼 50년대에 본격적으로 세워졌다. 모스크바엔 모스크바대학 본부, 외무부, 우크라이나 호텔 등 일곱 개가 건설돼 '스탈린의 일곱 자매' 라고 불린다.

20세기 초에 지은 미국 뉴욕의 마천루가 높이에 중점을 뒀다면 이들 '일곱 자매' 는 넓은 폭도 함께 강조한다. 그만큼 크지만 한편으론 살풍경하다. 건축학자들은 이들을 "인간적 친밀함을 포기하고 웅장함만 과시한 권위주의 건축의 대표작" 으로 친다. 하지만 독재자들은 권위적인 건축물을 선호했다.

거대한 건축물을 지어 "이 정도로 힘이 강하니 감히 넘보지 말라" 고 내외에 경고하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이다. 거대한 석상으로 유명한 이집트의 아부심벨 신전은 기원전 13세기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가 국경 남쪽의 누비아족에게 힘을 과시할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진시황의 아방궁과 만리장성도 비슷한 사례다.

지난해 중국의 상하이(上海)를 방문한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거대한 빌딩들을 보며 "우리도 이런 도시를 하나 건설할 수 없겠느냐" 고 수행원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지난 8일자에서 북한측이 일부 서방국가에 세계적인 건축가를 양성하는 게 우선 과제라며 건축학과용 장학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쌀도 얻어 먹는' 처지를 해결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대형 건물 등으로 권위부터 과시하겠다는 뜻은 아닐까 우려된다. 개혁.개방을 해서 그런 도시를 하나 지을 만큼 성공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시이길 바랄 뿐이다.

채인택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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