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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큐슈 후구, 이승에서 맛보는 저승의 유혹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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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호 08면

“기타큐슈(北九州)에 복어는 없지만 복어요리는 있습니다.” 일본 내 복어 어획량 1위, 유통량 70%를 담당하는 시모노세키(下關)를 코앞에 두고 기타큐슈로 발을 돌려야 하는 상황에 허 화백이 실망감을 나타내자 담당 공무원이 분위기 수습을 위해 건넨 한마디다. 그래도 간몬대교(關問大橋·기타큐슈와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한 듯 해협 건너를 바라보며 연방 입맛을 들썩이자 ‘시모노세키 인구 25만 명, 기타큐슈 100만 명’이라며 그럴듯한 배경을 설명한다.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소비가 많은 곳에 당연히 좋은 요릿집이 많다는 뜻이다. 공무원이 기타큐슈의 강한 자신감을 보이자 일행은 차에 오른다.

일본 가다 -기타큐슈 첫 번째 이야기.

접시 무늬가 보일 정도로 얇게 썰어야 제맛?
60년 전통의 '만년구' 실내 벽면은 유명인들의 사인을 담은 액자들로 빼곡해 마치 ‘이래도 음식 맛을 의심할래?’ 하며 일행에게 반문을 던지는 듯하다. 작은 체구에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이 인상적인 사장 쓰카모토(塚本照信)가 짤막한 인사를 건네고 곧바로 요리 준비에 들어간다. 신선한 복어와 함께 저울을 올려놓자 허 화백이 용도를 놓고 호기심을 보인다. 일행의 관심이 나쁘지 않은 듯 입과 껍질 제거를 시작으로 능숙한 솜씨로 복어를 손질하더니 독이 가득한 피와 내장을 제외한 부위를 저울 위에 올려놓고 확인을 부탁한다. 710g. 다시 뼈와 껍질을 제외하면 횟감용은 150g 정도가 나온다.

복어가 비싸고 특별한 이유는 맛뿐 아니라 독 때문에 수율이 떨어지는 탓이라는 설명이다. 손질을 끝냈으니 이제 요리의 하이라이트 회 썰기 차례다. 복어요리의 본고장인 만큼 기름종이 두께 정도는 나와야 한다며 허 화백이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미 숙성을 완료한 복어살을 가보 다루듯 어루만지더니 드디어 회 한 점을 썰어낸다.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순간 두툼하게(물론 일반 회보다 두께가 얇다) 회를 썰어내 일행들은 의구심을 보인다. 예행연습이 아닐까 하여 기다려보건만 여전히 두껍게 썰어낸다. 한국 손님들은 복어회를 논할 때 얇은 두께를 따지지만 자신은 맛있는 회가 더 중요하단다. 예전에는 얇게 썬 회를 선호했으나 최근에는 양식복어가 대부분으로 양식복어의 지방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두껍게 써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10시간 숙성하면 복어살이 단단해져 최대한 얇게 뜰 수 있고, 이 방법이면 양도 늘어나 장사에 보탬이 되지만 오로지 맛을 위해 4시간 숙성만 거친다는 것이다.

설명이 끝나도 허 화백이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보이자 접시에 층층이 곱게 포개진 복어회를 들고 방으로 안내한다. 최상의 맛을 느끼려면 일단 회 그대로 먹는 것이 좋다. 한 점으론 판단이 어려운지 허 화백이 버들잎처럼 야들야들 흔들리는 회 몇 점을 연달아 입으로 가져간다. 차진 식감과 함께 옅은 지방맛 그리고 은은한 향기가 마치 퇴적층처럼 층층이 쌓이더니 참치의 진한 풍미보다 오래도록 입 안에 남는다.

다음으로 무와 고추를 갈아 그 모습이 단풍 같다는 모미지오로시(紅葉下ろし)를 푼 간장에 찍어 먹으니 회의 개성을 최대한 이끌어낸다. 얇게 썬 회 서너 장을 겹쳐 먹는 것보다 감칠맛이 뛰어나다며 회춘한 듯 복어 맛을 새롭게 느끼게 됐다는 칭찬을 건네자 답으로 복어 지느러미를 넣은 히레사케(ひれさけ)를 내놓는다. 여기에 한국 손님들이 좋아하는 맑은탕도 준비했으니 속을 풀고 가라는 배려를 잊지 않는다. 맛과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자 허 화백이 ‘후구(ふぐ) 맛에 감동해 후쿠(ふく)를 먹은 것 같다’며 기타큐슈 복어맛을 정리한다(후구는 불구(不具) 또는 불우(不遇)와 발음이 같아 복(福), 즉 후쿠로 복어를 발음하기도 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금지령 철폐
복어 요리의 최대 걸림돌은 청산가리의 1000배에 달하는 복어 독이다. 일찍이 중국의 소동파는 일사(一死)를 불사할 맛이라고 했으며 『자산어보』의 저자 정약전도 누누이 독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복어 금지령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을 준비 중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복어 독으로 사무라이 사망자가 늘어나자 전투력 손실을 우려해 금지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복어를 일컬어 맞으면 죽는다고 하여 댓포(鐵砲)라는 별명이 붙기까지 했다. ‘복어는 먹고 싶지만, 목숨이 아깝다’는 일본 속담을 보듯이 맛과 목숨 사이에서 꽤나 골머리를 앓았나 보다. 반대로 복어 맛을 남의 아내와의 불륜에 비유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즐기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복어 금지령은 시모노세키를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복어 맛에 반해 철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참고로 한·일 모두 복어 관련 자격증 제도가 있으니 맛 때문에 목숨을 담보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점을 찾길 바란다.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 클레어(Clair)와 한진관광의 후원으로 2년간 일본을 방문해 다양한 요리와 온천 문화, 자연을 경험하고 그 체험을 독자와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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