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칼럼] 이 썰렁한 코미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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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 가 열띤 논쟁을 벌였다.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지. "

"그러면 사회주의에서는?"

"그야 정반대지. "

"…. "

난데없이 우리 정치 판에 이 가엾은 사회주의 광상곡이 울려퍼지고 있다. 자본주의자를 자처하는 야당의 김만제 정책위원회 의장이 열연하고 있으나, 관중석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썰렁하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몇몇 경제 시책을 겨냥해 "낡은 사회주의 정책" 혹은 "사회주의적 발상" 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인식대로 사회주의는 악이고 그에 반대하는 것만이 선이냐는 반문이 가능하지만, 자칫 색깔 논쟁을 부를 염려가 있으니 일단 보류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기업 규제, 노동 시간 단축, 건강보험 통합을 비롯해 그가 지적하는 문제들이 과연 사회주의적인 것이냐는 질문이 대두된다.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 세상에 어느 사회주의가 공적 자금을 1백50조원이나 퍼부어 부실 금융과 부실 기업을 연명시키고, 세상에 어느 사회주의가 성당에 피신한 노조 지도자를 검찰에 '자진' 출두시키고, 세상에 어느 사회주의가 준비 안 된 의약분업 강행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펑크 내고, 세상에 어느 사회주의가 나라의 연금과 기금을 풀어 증시를 부양하던가? 그야말로 턱도 없는 소리이며 사회주의가 곡할 노릇이다. 더는 사회주의를 모욕하지 말라!

정치가 국민윤리 교본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닐진대, 사회주의를 빗댄 그의 정치 공세를 크게 탓해서는 안 되리라.

그럼에도 그렇게 너그럽게 보아줄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그가 야당의 정책위 의장이기 때문이다. 뒷날 야당이 집권해 정책을 수행할 때, 이런 여러 사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유권자가 확실히 알아야 투표소에서 바른 선택이 가능하다.

사회주의적이기 때문에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 과제를 폐기할 것인지, 사회주의적이기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과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외면할 것인지, 사회주의적이기 때문에 의약분업을 비롯한 현재의 건강보험 체제를 무효로 돌릴 것인지 야당은 분명히 밝힐 의무가 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가 악이라면, 그 반대의 착취 또한 선이 아니라 악이다.

사회주의 '반대' 에 골몰한 나머지, 그 반대가 가리키는 내용조차 착각한 것이 아닌지 자못 의심스럽다. 전교조가 '가장 사회주의적 단체' 라는 발언은 아마도 망발의 기념비가 될 것이다.

우리 국민 누구도 구조조정에 반대하지 않고, 우리 국민 누구도 근로조건 개선에 반대하지 않고, 우리 국민 누구도 기초생활 향상에 반대하지 않고, 우리 국민 누구도 의약분업 정착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金의장의 진의는 현안의 본질이 아닌 집행 방식에 있을 터이다. 그 방식과 관련해서 포퓰리즘, 즉 인기영합주의가 시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아마도 그는 대중 인기를 선동하고 거기 편승해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 경제와 사회를 망친 페론의 선례를 상기시키려는 듯하다. 현정권이 취하는 노사정 편법이나 일부 시민운동 활용은 확실히 포퓰리즘 추종으로 의심받을 여지를 남긴다.

이런 맥락에서의 포퓰리즘은 그 족보로 따지면 파시즘의 자식이지, 사회주의의 일가가 아니다. 파시즘과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관계이므로, 상대를 포퓰리즘으로 탓하면서 사회주의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실로 무지가 아니라면 억지의 소산이다.

여기 속편이 따르는데, 이번에는 金의장과 진념 경제부총리의 합동 공연이다. 陳부총리는 "사회주의란 말 대신에 균등화 정책이란 말을 써주고" 또 "싸울 때 싸우더라도 제발 사회주의란 말만은 빼달라" 고 불과 10여분의 대화에서 네번이나 金의장에게 간청했다.

마치 사회주의라는 비판만 없다면 사회주의라고 비판받은 모든 정책을 포기라도 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들에게 바라는 국민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경제위기 극복이다.

그런데도 사회주의냐 아니냐의 입씨름만 앞설 뿐, 정작 앞세워야 할 경제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대안 없이 정부 정책을 사회주의로 모는 야당의 공세도, 사회주의로만 몰지 않는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식의 정부 대응도 모두 정상이 아니다. 이 찜통 더위에 코미디마저 짜증나게 만드니….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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