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더위 싹 가셔요" 여름속 겨울 스포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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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요즘 스포츠는 제철이 없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다양한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상식을 깨고 여름에 맛보는 겨울 스포츠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처럼 별미다. 반복되는 열대야에 짜증나고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진 사람들은 '여름 속의 겨울' 을 찾아가 보자. 생각만으로도 무더위가 저만치 달아나지 않는가.

# 스키-더위 잊고, 운동도 하고

스키는 겨울 스포츠의 대명사. 그런데 어떻게 여름에 스키를 탈까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다. 답은 바로 '실내 스키장' 이다.

'스키를 타려면 산으로 가야지 실내에서 무슨…'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실내 스키에도 나름대로 장점과 매력이 숨어 있다.

지난 8일 오전 11시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알파인 실내 스키장' (http://www.goodski.co.kr)(031-712-0140). 문을 열고 들어서자 특이하게 생긴 슬로프가 눈에 띈다. 7m 길이의 슬로프에는 눈대신 하얀 부직포가 깔려 있다.

또 중.상급자용 슬로프는 컨베이어 벨트를 응용해 제자리에서 계속 스키타는 것이 가능하다.

이 시간 이용자들은 20여명. 각 슬로프에 전담 강사가 있어 스키어가 내려올 때마다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다.

초보자들은 주먹 쥔 두 손을 앞으로 뻗은 채 미끄러져 내려왔고 중.상급자들은 무릎을 좌우로 누이는 어려운 기술을 익히고 있다.

스키 경력이 15년째라는 이주희(45.주부.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씨는 "그동안 강습받은 적이 없어 자세가 엉터리" 라며 "여기서 한달 만에 15년 묵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고 말했다.

옷차림도 흥미롭다. 두꺼운 스키복과 장갑.스포츠용 선글라스 등으로 멋을 내는 겨울 스키와 달리 여름 스키는 반바지에 단촐한 티셔츠 차림으로 탄다. 때문에 여성들은 짧은 핫팬츠와 민소매 티셔츠로 잔뜩 멋을 부린다.

지난주 스키를 시작한 박혜숙(32.주부.성남시 분당구 분당동)씨는 "여름에도 겨울 스포츠를 즐긴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며 "운동을 하며 더위도 잊을 수 있어 1석2조" 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이용자들은 "실내 스키의 매력은 손쉬운 기술 습득" 이라고 입을 모았다. 야외 스키장보다 훨씬 안전하고 자세하게 스키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내에서 배운 기술이 실제 눈 위에서 적용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스키장 전남석(全南錫.39)사장은 "지난 겨울 스키장에 갔을 때 실내에서 2~3개월 배운 회원들도 상급자 코스에서 멋지게 내려왔다" 며 "본인들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고 말했다. 강습료는 1개월에 18만원.

# 스노보드-여름 예습, 겨울엔 실습

웃으면서 들어가 울면서 나오는 게 영어 배우기라고 한다. 그러나 울면서 들어가 웃으면서 나오는 것이 독일어다.

이 비유가 맞다면 스키는 '영어' 고 스노보드는 '독일어' 다. 처음엔 쉽게 입문했다가 갈수록 고급 기술이 등장하며 어려워지는 것이 스키다.

이에 반해 스노보드의 출발은 만만치 않다. 두 발이 모두 보드에 묶여 있어 자칫하면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다. 하지만 정지법과 회전법만 익히면 스노보드는 갈수록 쉬워진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알파인 실내 스키리조트' (http://www.indoorski.co.kr)(02-592-0934)는 스키는 물론 스노보드를 배우기에도 적합한 곳이다.

모든 장비가 비치돼 있어 빈손으로 가면 된다. 특히 슬로프 맞은 편의 벽면이 거울로 돼있어 스노보드를 타는 자신의 자세를 직접 보면서 교정할 수 있다.

또 뮤직비디오를 통해 나오는 힙합 리듬에 맞춰 스노보드를 배우는 것도 재미다.

8년째 이곳을 운영 중인 백영희(白英姬.54)사장은 "여름이야말로 스노보드를 배우는데 알맞은 계절" 이라고 말했다.

시원한 실내에서 여름에 스노보드를 정복한 다음 시즌인 겨울에는 눈 사이를 누비며 제대로 스릴을 만끽해야 한다는 것.

스키를 알면 스노보드를 익히는 속도도 빨라진다. 스키 실력이 상급 수준인 함병숙(31.여.회사원.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이곳에서 1개월 만에 스노보드를 마스터했다" 며 "회전식 실내 슬로프 위에서 일정 속도를 유지하려면 교과서적인 자세가 필수적" 이라고 비결을 설명했다. 조금만 자세가 흐트러져도 회전하는 슬로프를 따라 올라가거나, 미끄러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여름에 배우는 스노보드는 운동량도 적지 않다. 회전식 슬로프 위에 올라간 회원들은 5분만 지나도 땀에 흠뻑 젖을 정도였다. 학기 중엔 인근 중고생들이 클럽활동(CA)시간을 이용해 단체로 이곳을 찾기도 한다. 강습료는 1개월에 18만원.

# 스케이트장-이 곳은 한겨울

지난 7일 오후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02-2649-8454). 실내는 밖과는 정반대로 한겨울이다. "쌩!" 하고 불어오는 찬바람.

순간 "와, 정말 시원하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5분 정도 지나자 지금이 여름이란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또 1천8백㎡나 되는 얼음 바닥에선 차가운 서리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마치 눈보라 속을 달린다는 착각에 여름이 끼어들 틈도 없다. 한마디로 바닥 전체가 '초대형 에어컨' 이다.

이날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은 1백여명. 이들이 연출하는 풍경도 다양했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은 두 분류로 나뉘었다. 일명 '함께파' 와 '벤치파' . 아이들과 손잡고 스케이트를 타는 함께파와 달리 벤치파는 말 그대로 자리만 지키고 있다. 링크를 돌고 나선 "엄마, 나 타는 것 봤어" 하며 자랑스레 달려오는 아이에게 엄마는 엄지손가락을 올려보이며 웃어준다.

벤치에 앉아 있던 김은숙(金銀淑.31.주부.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씨는 "조카가 스케이트를 타는 동안 책을 읽었다" 며 "너무 시원해 굳이 스케이트 타지 않아도 피서지에 온 기분" 이라고 흐뭇해 했다.

아이스링크 한가운데서 눈길을 끄는 커플도 있다. 아이스댄싱을 익히던 오진성(吳進盛.56.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지경자(池京子.50)씨 부부는 "집에선 전기료 때문에 에어컨 틀기도 겁난다" 며 "이곳은 더위도 식히고 부부간 호흡도 맞출 수 있어 참 좋다" 고 자주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스링크의 얼음 온도는 영하 5도. 실내 온도는 영상 20도라지만 체감 온도는 이보다 훨씬 낮다.

목동 아이스링크의 김형범(金炯梵.43)차장은 "얼음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전기료만 한달에 3천만원을 쓰고 있다" 며 "피서와 스포츠, 두마리 토끼를 잡기엔 실내 스케이트가 최고" 라고 말했다.

정빙(整氷)차를 이용해 1시간마다 얼음 바닥을 고르기 때문에 관리도 철저한 편. 초보자라면 바지가 젖을 것에 대비, 여벌의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또 스케이트 타다가 추우면 매점에서 따뜻한 컵라면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것도 남다른 재미다. 입장료는 2천5백~3천5백원이며 스케이트 대여료는 3천원(두시간 기준)이다. 개장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며 쉬는 날은 없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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