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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쉘 위 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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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소박한 원작의 깊이가 섹시한 스텝으로 바뀌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존이 비벌리와 춤추는 장면은
일본판엔 없는 특별한 매력을 발산한다

쉘 위 댄스?
감독 : 피터 첼섬 주연 : 리처드 기어.제니퍼 로페즈.수전 서랜든 장르 : 드라마 등급 : 12세
홈페이지 : www.shallwedancemovie.co.kr 20자평 : 일제냐 미제냐, 그 골라먹는 재미

리메이크 작품은 태생적 한계가 있다. 원작과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관객들의 저마다 다른 기대치를 실망시키기 딱 좋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듬해인 1997년, 미국 개봉 당시 190만 명이 관람해 역대 일본 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기록인 1000만달러 흥행수입을 올렸던 '쉘 위 댄스'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쉘 위 댄스?'도 여기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소박했던 원작과 달리 화려하고 볼거리도 많아졌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일부에선 원작의 깊이가 실종됐다고 비난한다.

쳇바퀴 돌듯 직장과 집을 오가며 자기 삶을 송두리째 일에 바친 평범한 중년 샐러리맨. 그가 사교댄스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는 원작 줄거리는 꼭 꼬집을 수는 없지만 삶에 무언가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비해 할리우드판은 허리가 휘어져라 일만 하는 소시민의 자리를 잘나가는 유언장 작성 전문 변호사 존(리처드 기어)으로 대신했다. 게다가 나이 먹어서도 여전히 무료할 수는 있으나 절대 무기력해 보일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리처드 기어를 캐스팅함으로써 더욱 볼거리에만 치중했다는 편견을 심어주기 알맞다. 제니퍼 로페즈의 볼륨 있는 몸매와 현란한 춤솜씨는 또 어떠한가.

하지만 무대가 도쿄가 아니라 시카고라는 점, 다시 말해 미국은 사교댄스가 금기도 아니고, 내 집 마련이라는 일생일대의 목표를 달성한 뒤의 허탈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쉘 위 댄스?'는 나름대로 잘 만들어진 리메이크작이다.

기본 줄거리는 원작과 비슷하다. 안정된 직업과 가정, 겉으로 보기엔 행복의 모든 조건을 갖췄지만 왠지 무기력한 가장 존이 출퇴근길 기차역에서 봤던 댄스교습소의 춤 선생 폴리나(제니퍼 로페즈)에 끌려 볼룸 댄스를 배우면서 다시 삶의 활력을 찾는다. 그러나 존은 아내 비벌리(수전 서랜든)에게 차마 볼룸 댄스를 배운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비벌리는 존이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해 사설탐정을 붙인다. 여기에 스포츠광인 척하지만 실은 맘껏 볼룸 댄스를 춰보고 싶은 존의 직장 동료 링크 등 나름대로 상처는 있지만 이를 춤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내는 댄스교습소 수강생들의 캐릭터도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말은 사뭇 다르다. 원작의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도 리메이크작의 명장면으로 꼽았던 존이 비벌리와 함께 춤추는 장면은 일본판이 보여줄 수 없었던 특별한 매력을 맘껏 발산한다. 턱시도에 장미꽃 한 송이를 가슴에 안고 아내가 야근 중인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 위로 올라오는 존의 미소는 중년들에게 비록 감정이입은 안 될지언정 판타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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