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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언론개혁과 언론 줄세우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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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사회 원로.대학 총장.시민단체 대표.종교인 등 각계 인사 32인이 내놓은 '최근 언론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 은 언론사 세무조사에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우리 사회 모든 당사자들이 간직해야 할 고언(苦言)이다.

"언론개혁은 우리 사회의 오랜 숙원이다… 시대적 과제에 언론사들이 소홀히 해왔고, 반성해야 한다" 는 지적을 우리는 겸허히 받아들인다.

편집권 독립, 독자의 알 권리 존중, 언론 횡포로부터 개인 사생활 보호, 투명경영과 ABC제도, 공정보도를 위한 전문성 및 윤리의식 등 성명서에서 예시한 실천과제에 대해 우리는 이를 정착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이번 원로.지식인들의 비판은 더욱 잘하라는 충고라고 생각한다.

"세무조사는 성역(聖域)이 있어선 안되고,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비리는 적법하게 처벌돼야 한다" 는 발언은 우리가 줄곧 견지한 입장과 같다. 세무조사의 심각한 문제점과 언론탄압 의혹의 사례로 성명서에 언급된 내용, 즉 유례없는 대규모 조사인력 투입과 계좌추적, 23개 언론사가 탈세했음에도 6개 언론사만 고발한 데 따른 공정성 훼손 등은 우리가 이미 문제 제기한 내용과 별 차이가 없다.

특히 이들 인사는 세무조사가 촉발한 지식인 사회의 편가르기 풍조를 개탄하고 있다. "지식인들이 어느 한편에 서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중 어느 한편이 부정되면 언론이 획일주의에 빠지고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는 성명 내용은 우리 사회의 이념 대립과 갈등이 위험수위에 올라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내편이 아니면 적(敵)' 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민감한 사회적 쟁점에 대해 '개혁이냐 아니면 반개혁의 기득권 옹호냐'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좌파냐, 특권층 수구(守舊)주의냐" 는 2분법적 잣대가 난무하고 있다.

'주구(走狗)' '빨갱이' 라는 적개심 깔린 상호 비방이 판을 친다. 이런 장면의 한복판에 있는 정치권이 대립을 부채질하고 있으며 친일(親日)논쟁 또한 그런 사례 중 하나다.

"국민은 사회 혼돈에 불안해한다. 정신적 공황(恐慌)상태에서 벗어나 사회가 표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는 원로들의 호소는 여론 공감대를 폭넓게 확산시킬 것이다. 이를 위해 지식인 사회는 천박한 양극화의 분위기를 걷어내야 한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생산적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여야는 사회갈등과 대립을 융화.중재하는 정치의 기본 책무에 충실해야 한다. 음모론적 시각과 정치적 실리를 따지는 접근자세에서 벗어나 사회통합 쪽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정권 쪽에서는 "정부가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양극화로 치달았다" "세무조사가 언론 길들이가 아니냐는 의혹을 해소하기 어렵다" 는 지적이 왜 나왔는지를 음미하고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정부가 호흡을 가다듬고 납득할 수 있는 처리방안을 제시하라" 는 주문은 시의적절하다. 언론개혁이 언론 줄세우기가 돼선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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