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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정바람의 함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공직 사회에 내밀히 부는 사정(司正)바람은 거세지만 무언가 찜찜하다. 장.차관들을 주로 겨냥하는 이번 공직 감찰이 통상활동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지만 체크 리스트를 보면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조직 관리.업무 능력 등 공적 영역을 넘어 주변의 평판.여자관계.성품.주벽(酒癖)등 사생활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정치권과의 친소(親疏), 대 언론 관계까지 추적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이런 탓에 레임덕(집권 후반기 권력누수)방지용 사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공직 사회의 일하는 분위기를 위해 사정으로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밖에 없다는 게 권력 운용측의 오랜 고민이다.

이런 고민은 일정수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공직 사회는 구조조정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채 무사안일과 눈치보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일수록 다음 정권을 누가 잡을 것이냐에 관심을 쏟고 정치권에 줄대기를 하는 집권 말 증후군(症候群)이 공직 사회의 잘못된 풍토였다.

그러나 이번 사정이 집권 후반기의 권력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꺼내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만 비춰져선 곤란하다. 무엇보다 사생활 침해 요소가 다분하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써먹었던 약점 캐기 식이라면 그같은 공직 사회 관리 방식은 한심하다.

더구나 점검 항목 중 언론 관계와 업무 홍보 부분은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미묘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국정은 잘 굴러가는데, 홍보가 부족하다" 는 권력 상층부의 불만이 깔려 있다면 공직자들은 일보다 정권 홍보에 힘을 쏟게 마련이다.

사정으로 기강을 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개혁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사명감을 불어넣는 쪽으로 가야 한다. 뒤를 캐는 방식은 부작용이 따른다.

공무원들의 명예와 사기를 떨어뜨리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식의 압박에 공직사회 역시 전가의 보도인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맞서 온 것이 과거 정권 때의 경험이다.

그로 인해 집권세력과 공직 사회의 불신.갈등이라는 역효과를 낳았다. 관계 당국은 사정의 그런 함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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