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버려야 할지, 걷다보니 알겠더군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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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호 10면

“아무리 길이 아름다워도 그 길을 정말 아름답게 만드는 건 사람이에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만들어 내는 스토리가 걷기를 재미있게 만들지요.”

『산티아고 가는 길…』 3부작 완간한 김효선씨

‘걷기 전도사’ 김효선(55)씨는 사람 얘기부터 꺼냈다. 두 딸이 공부를 마친 2005년 ‘이제 아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감에서 벗어났다’고 마음먹으면서 본격적으로 걷기 여행을 시작한 그다. 그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에 도전했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작은 도시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다. 파울로 코엘료가 걷고 『순례자』를 쓴 길이기도 하다. 길은 여러 갈래였다. 그는 그중 대표적인 길 ‘카미노 프랑세스’ ‘카미노 노르테’ ‘비아 델라 플라타’ 등을 섭렵했다. 어디서든 열심히 메모하는 습관은 그를 여행작가로 만들었다. 2007년 첫 책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유럽을 만나다』에 이어 지난해엔 『산티아고 가는 다른 길, 비아 델라 플라타』를 내놨다. 또 최근엔 ‘산티아고 가는 길 3부작의 완결판’을 표방하며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포르투갈을 만나다』를 출간했다.

그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두고 “여행자를 부르는 길”이라고 말했다. 편안하고, 안전하고, 저렴하다는 게 이유다. 숙식 비용이 하루 3만원이면 충분할 정도여서 비행기표만 싸게 구하면 300만∼350만원 정도에 한 달 코스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한 번 떠나면 한 달여씩 줄곧 걸어야 했다. 물집 잡힌 발의 고통을 참아 가며 하루 평균 8시간을 걸었다. 걸으면서 그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만났다. 그의 말대로 “길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 사람들”이다. 장애인도, 환자도 많았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나이 일흔의 환자도 그와 함께 길을 걸었다. 배낭 절반을 인슐린 주사로 채워 다니면서도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적극성을 보여 준 길동무였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도 여행지 바 주인에게서 처음 들었다. 함께 있던 여행자들이 “세상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것”이라며 그를 위로해 줬다.

그는 “걷기 여행을 통해 삶이 단순해졌다”고 말한다. “여행 배낭을 싸다 보면 사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여행을 다니며 집 크기도 줄였다.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욕심도 버렸다. 그만큼 자신만의 시간이 생겼고 자유로워졌다. 그는 여전히 가족에게 얽매여 사는 동년배 주부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다 큰 자녀 밥 걱정하고 결혼시킬 걱정하고 집 사 줄 걱정하면서 자기 생활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의 변화를 가족들도 좋아했다. 두 딸은 “엄마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이 멋지다”고 했고, 늘 바쁜 남편은 “당신의 생활을 찾아가는 게 고맙다”고 말했다. 책을 낸 뒤 강의 요청도 많이 받았다. 주로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휴먼테크’에 대한 강의를 했다. “우리 사회는 은퇴자들에게 재테크ㆍ재취업만 강조합니다. 하지만 과연 몇이나 재테크ㆍ재취업에 성공할까요. 그걸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 취급을 하니 은퇴자들이 우울할 수밖에요. 나를 배우고 나를 찾으면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방법이 바로 걷기예요. 걸으면서 내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리도 되고, 뭘 하며 살아야 할지 아이디어도 떠오르거든요.”

그는 “기회 되는 대로 ‘산티아고 가는 길’에 다시 가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늘 마음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만 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이 아무리 좋다 한들 늘 여행을 떠나 살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결국 돌아갈 곳이 도시라면 도시를 걷고 싶은 곳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는 게 먼저 ‘도보꾼’이 된 그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송파 소리길, 전주 아름다운 순례길 등 도심 속 걷기 코스를 더없이 귀하게 여긴다. “걷기 문화가 도시 풍경을 친환경ㆍ친인간적으로 바꿀 것”이란 기대가 커서다.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6월 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풍경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축제를 열어 걷기 캠페인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단체를 만들기 싫어 개인 차원에서 벌이는 행사다. “이제 막 걷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멘토가 돼 주고 싶어 용기를 냈다”는 그는 “비만 안 오면 무조건 성공”이라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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