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후 AS인력 감축…차보증수리 기다리다 지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일요일인 8일 오후 부인과 함께 북한산에 놀러갔던 A씨(42.경기도 고양시)는 어이없는 낭패를 당했다.

올 초 대우자동차 영업소에서 정비를 받은 2000년식 누비라II 승용차가 북한산 대서문 1㎞ 위 편도 1차로 도로에서 갑자기 서버리면서다. 서비스센터에 긴급 애프터서비스를 신청한 부부 앞에 정비요원이 도착한 것은 다섯시간 반이 지난 오후 8시30분.

고장난 A씨의 차에 막혀 덩달아 땡볕 내리쬐는 도로에 몇 시간 동안 갇힌 10여대의 뒤차 승객들까지 휴일을 망치고 말았다. A씨는 "차를 살 때는 '한 시간 안에 긴급 출동 서비스를 해준다' 고 큰소리치더니 이게 뭐냐" 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카니발 승합차를 산 C씨(39). 최근 오일팬에서 기름이 새는 것을 발견하고 기아자동차 서비스센터에 예약정비를 신청했다. 하지만 센터에서는 "일손이 부족해 힘드니 2주 뒤에 연락해 달라" 는 말만 되풀이했다. C씨는 결국 자기 돈을 들여 사설 정비소에서 수리를 받았다.

국내 자동차의 애프터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피해와 불편이 잇따르고 있다.

늑장 출동은 물론이고 잠깐이면 될 수리도 몇주일씩 가기 일쑤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등으로 차량 정비 인원을 크게 줄인 탓이다.

차를 살 때 차값의 2% 정도인 보증수리비까지 함께 지불한 소비자들로서는 이중의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 30% 줄인 정비인력=자동차 10년타기운동 시민연합에 따르면 대우.현대.기아자동차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정비인력을 최고 30%나 줄였다. 대우의 경우 자동차 정비 요원 2천3백여명(1997년) 중 최근까지 6백70여명을 해고했다. 구입 후 2년 이내의 보증수리 기간에 있는 이 회사 차량 수는 43만여대. 정비사 한명이 2백60대 이상의 차량을 수리해야 하는 셈이다.

현대.기아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1~2일 내에 받기로 돼있는 예약 정비 서비스도 경우에 따라 몇주일씩 기다려야 한다.

◇ 부실 정비 우려도=현대자동차의 서울 시내 한 영업소 정비사 K씨는 "휴가철을 맞아 차량 정비.점검을 맡기려고 하루 수십명씩 찾아오지만 일손이 못따른다" 면서 "우리는 우리대로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지만 불평만 들을 뿐" 이라고 하소연했다.

"다른 건 몰라도 혹시 일이 밀려 불량 정비가 발생할까 두렵다" (대우자동차 한 정비사)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의 관계자는 "정비인원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며 "최근 아웃소싱(외주)정비소를 확대해 정비인원을 확충했다" 고 주장했다.

자동차 10년타기운동 시민연합의 임기상 대표는 "차를 살 때 보증수리비를 낸 만큼 신속한 정비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 라며 "자동차회사들이 '고객만족' 을 외치려면 정비인력 확보부터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홍주연.남궁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