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는 천생연분, 기수 시험 붙자마자 대학 그만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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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영 조교사는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그 당당함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 조교사가 됐다. [사진=신동연 기자]

이 여자. 체구는 작지만 당차다. 한국 경마 최초의 여자 기수이자 여자 조교사 1호 이신영(29)씨.

‘1호’니 ‘최초’니 하는 것은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스러운 타이틀이다.
“아뇨. 전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쟁취할 만한 거죠. 그걸 즐기는 편이에요.”

역시 첫인상 그대로다.
부산 동아대 체육학과 1학년이던 1999년, 한국마사회의 기수 모집에 응모해 합격한 뒤 2년간 후보생 시절을 거쳐 2001년 7월 국내 최초의 여자 기수로 데뷔했다. ‘금녀의 벽’을 깬 이신영 기수는 이후 수많은 ‘최초 기록’을 세워나갔다. 8년간 남자 기수와 맞붙어 거둔 기록은 855전86승. 승률 10%는 결코 우습게 볼 게 아니다. 2위도 66회(복승률 17.8%)나 했다.(국내 경마 베팅에는 1위를 맞히는 단승식, 순서와 상관없이 2위까지 두 마리를 맞히는 복승식, 1·2위를 순서대로 맞히는 쌍승식 등이 있다. 국내 경마팬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방식이 복승식이기 때문에 복승률은 기수의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다.)

여자로서 핸디캡은 없었을까.
“참 많았죠. 우선 남자 기수에 비해 말을 탈 기회 자체가 적었어요. 선입견 때문에 고생 많이 했어요. 1등으로 들어오면 ‘그 말은 누가 타도 1등 할 말’이라든가, 등수에 들지 못하면 ‘말은 좋은데 여자라서 그랬다’는 얘기 많이 들었죠. 한번은 동료 남자 기수가 욕을 하기에 주먹을 날린 적도 있어요. 어릴 땐 혈기에 넘쳐서 사고도 많이 쳤는데 이젠 그러지 않죠.”

이씨는 지난달 24일 조교사 시험에 최종 합격, 국내 최초의 여자 조교사 타이틀도 차지했다. 그것도 35명의 남성 경쟁자들을 물리친 수석 합격이었다.
“너무 일찍 조교사가 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기수 시작할 때부터 조교사 준비를 해왔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기수가 선수라면 조교사는 감독입니다. 선수생활 끝나면 감독을 해야죠.”
명쾌하다.

“사실 일찍 되긴 했죠. 기수 경력 8년이면 조교사 시험 자격이 생기거든요. 자격이 생긴 첫 해에 시험을 봤는데 덜컥 합격한 거죠. 처음엔 조교사 자격만 따놓고 기수 생활을 더 하려고 했는데 기회가 주어졌을 때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씨는 조교사를 감독으로 표현했다. 성격으로 보면 CEO에 가깝다. 경마장에는 경주마를 소유하고 있는 마주, 말을 타는 기수, 말을 관리하고 돌보는 관리사, 그리고 조교사가 있다. 조교사는 마주와 계약을 하고, 말을 훈련시키고, 어떤 말에 어떤 기수를 태울 것인가 결정한다. 자신에게 말을 맡긴 여러 마주들을 일일이 상대해야 하고, 자신의 마방(팀)에 소속된 기수와 관리사들을 관리·감독하는 역할까지 한다. 이들과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좋은 성적도 올릴 수 있다. 인간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조교사의 수입은 순전히 상금에 의존한다. 상금의 81.21%는 마주의 몫이며, 조교사는 6.62%를 챙긴다. 성적이 좋아야 수입도 많아지고, 마방 식구들도 좋아진다. 좋은 조교사는 냉혹한 승부사가 돼야 한다.

만 서른 살도 안 된 여자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여자 기수도 핸디캡이 많은데 여자 조교사는 더욱 힘들지 않을까.

“오히려 기수 때보단 괜찮을 것 같아요. 기수가 됐을 때는 좋은 것만 생각하다가 ‘아, 여긴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라는 생각까지 했지만 지금은 ‘앞으로 더 큰 시련이 있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하거든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어려울 것 같지 않아요.”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같다.
“나이가 어리다는 건 확실한 핸디캡이죠. 마주와 관리사들은 보통 나이가 많고, 저보다 나이 많은 기수도 많으니까요. 솔직히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하는 게 숙제죠. 하지만 여자라서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해요. 조교사는 몸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이씨는 “정년(63세)까지 조교사를 하겠다”고 했다. “이 일이 천직”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마산제일여고 3학년이던 1998년, 수능 시험을 본 직후 학교에서 한국마사회의 ‘기수 모집’ 공문을 보여줬다. 당시엔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외가에 왔다가 친척들과 함께 과천 서울경마장에 놀러 간 게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경마라는 걸 처음 봤어요. 기수들 체격이 작더라고요. 말 타고 달리는 게 정말 멋있었어요. 운동은 잘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기수도 잘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때 마침 외환위기여서 나름대로 진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동아대 체육학과에 입학했지만 바로 기수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학교는 미련 없이 중퇴했다. 여자 기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을까.
“솔직히 저도 기수가 어떤 건지 잘 몰랐어요. 부모님께 좋은 것만 말씀드렸죠. 기수가 되면 교육도 시켜주고, 용돈도 주고, 60세 이후까지 일할 수 있다 등등. 원래 부모님은 제가 하는 일에 반대하신 적이 없어요. ‘기수 하고 싶으면 해라’고 하셨죠. 그런데 나중에 제가 다치거나 남자들 사이에서 시달릴 땐 ‘그거 꼭 계속 해야 하느냐’고 말씀하셨죠.”

친구들의 반응은 “너 그렇게 튀는 거 할 줄 알았다”였다.
“학교 때 좀 튀었죠. 반장도 하고, 학생회장도 하고, 운동도 잘하고, 수다도 잘 떨고, 마당발이고. 아, 그런데 공부는 잘하지 못했어요. 중상 정도?”

기수 하면서 좋은 건 ‘시간이 많은 것’이라고 한다. 경마가 열리는 토·일요일을 빼면 평소 새벽 훈련이 오전 9시면 끝난다. 그 다음부턴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여행도 다니고, 영화도 보고, 수상스키 등 레저 스포츠도 즐긴다. 말과 같이 생활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원래 동물을 좋아했다.

힘든 건 역시 체중 조절이다. 먹고 싶은 것 맘대로 못 먹는 것,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부정 경마’에 대한 오해도 견디기 힘들다. 가끔 낙마할 때가 있는데 ‘고의 낙마’라는 의혹이 쏟아지면 억울하고 슬프다.

“말에게 밟혀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누가 목숨 걸고 낙마하겠어요?”
그래서 사람 관리가 힘들다. 실제로 기수들에겐 유혹이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친해진 사람이 어느 날 ‘정보’를 달라고 한다. 많이 신세 진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더욱 힘들다. 그래서 밥값은 꼭 자기가 내는 버릇이 생겼다.

8년간 기수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있어요. ‘녹하지’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냥 그렇고 그런 말이었는데 저하곤 궁합이 잘 맞았어요. 스타트는 무척 늦는데 중간부터 치고 나와서 끝까지 달리는 거예요. 녹하지하고 호흡 맞춰서 2승을 했어요. 모두 예상을 뒤엎은 승리였죠. 그때 배당률, 장난 아니었어요.”

미혼이지만 연애도 못해본 쑥맥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체중 조절이 문제였다.
“맘대로 먹지도 못하고 경주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으니까 오래 만나지 못하겠더라고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결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요.”
경마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바라는 것도 많다.

“호주·미국·일본·홍콩의 경마장을 다 가봤는데 정말 부러웠어요. 온 국민이 즐기는 레저 스포츠예요. 처칠 영국 祺?� ‘총리보다 더비 우승 마주가 되고 싶다’고 했다는데 우리는 VIP들이 마주를 꺼릴 정도로 부정적이잖아요.”

예전에 비해 기수의 수준은 높아졌는데 환경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 경마 수준이 낮다 보니 외국에 진출할 기회도 없고, 외국의 수준 높은 경주마와 기수가 한국에 올 일도 없다. 상금도 올리고, 수입 경주마의 상한가도 높여서 좋은 말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기수와 조교사는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대통령이 부럽지 않죠. 영악하게 잘할 자신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좋은 성적 올리는 거요. 저는 여자 선배가 없어서 힘들었지만 제가 선구자 역할을 잘할 테니까 여자 후배들이 저 이상으로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손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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