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엔 호러 뮤지컬·연극 상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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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젊은이들의 해방구 서울 대학로. 연극.뮤지컬의 메카인 이곳 여름은 시절과 반대로 '한랭전선' 이 우세하다.

관객들의 오금을 저리게 할 극단적 공포체험의 무대가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이유야 뻔하긴 하다. 이 맘 때의 단골 어휘인 '납량(納凉.여름에 더위를 피해 서늘한 바람을 쐼)효과' 를 겨냥한 노림수다. 지난해 사회.문화계를 강타한 '엽기 신드롬' 이 이곳에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작품 목록을 보자. 우선 서구 컬트문화( 'cult' 는 종교적인 예배.숭배의 의미로 소수의 애호가들로부터 선택돼 열광적으로 떠받들어 지는 문화)의 원조인 공포 뮤지컬 '록키 호러 쇼' 가 있다.

진우예술기획(02-516-1501)이 만들어 26~8월 26일까지 폴리미디오 씨어터에서 공연 할 이 작품은 한마디로 '삼류 잡탕 쇼' 다. 그래도 벌써 고전의 반열에 오른지 오래다.

1973년 6월 영국 런던의 60석짜리 허름한 극장에서 초연돼 단번에 경배(敬拜)의 대상이 된 호러 뮤지컬의 전설이다.

3년 전 이맘 때 국내에서 맛보기가 있었다. 그 때는 뮤지컬에서 세포분열한 영화였다. 짐 셔먼 감독의 '록키 호러 픽쳐 쇼' 는 대학로 동숭씨네마텍에서 심야프로로 상연됐다.

셔먼은 이 뮤지컬의 작가.연출자이며 록 가수이기도 한 리처드 오브라이언과 함께 초연 동업자였다. 아무튼 이 뮤지컬은 그해 영국 드라마 비평가상 최고 뮤지컬로 선정돼 '반(反)문화의 고전' 으로 지금껏 군림하고 있다. 현재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하고 있다.

무엇이 이 작품을 컬트로 이끌었나. 이번 무대의 연출자로 영국에서 공부한 이지나씨의 말이다. "사회의 모럴(도덕)에서 벗어나고픈 젊은이들의 해방 욕구를 반영한 때문이다. '진지함' 운운하면 닭살이 돋는 그들에게 1시간 30분 동안의 분출구 제공,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

초연과 근 30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 부활한 이 작품은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닮았다. 그래서 주인공도 '닥터 프랑큰퍼트' 다.

스승을 찾아 여행을 떠난 연인 커플이 폭우를 만나 거대한 성(城)으로 피신했다가 해골같은 성지기, 외계인 등 낯선 인물을 만나 괴상한 의식의 파티를 벌이는 내용이다.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빚어지는 돌발적 폭력과 양성애, 마약, 기이하게 분장한 배우들, 70년대 브리티시록을 끌어들인 굉음의 음악 등 엽기적 상상력이 넘친다. 그 너머에 있는, 기성세대의 위선을 조롱하는 폭소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면 관극(觀劇)은 성공한 셈이다. 과연 이 묘미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인가는 제작진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록키 호러 쇼' 보다는 규모가 작은 공포 연극 두 편은 이미 공연 중이다.

기적인 부모 살해 사건을 악몽처럼 그려낸 극단 비파의 '저녁' (22일까지 동숭홀 대극장, 02-3142-8887)과 인간 단죄의 문제를 환상적으로 우려낸 극단 인혁의 '세기초기괴기전기' (8월 19일까지 아룽구지 소극장, 02-766-1482)이다.

배우들의 알몸연기로 관객을 유인하는 '저녁' 은 서로 소통 못하는 가족의 비극을 고도의 긴장과 잔혹 상황으로 풀어가는 실험성 짙은 작품이다. 두 미소년이 폭력을 권위의 상징으로 아는 아버지와 자식에게 무조건적으로 집착하는 엄마를 살해한 뒤 알몸이 돼 춤을 추다가 하나로 되면서 청년으로 태어나는 이야기다. 짧으며 상징적인 대사, 압축된 동작, 아비규환의 비명 등이 관객을 짓누른다. 윤형섭 작.성준현 연출.

'괴기전' 은 삼류 소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세기초기괴기전기' 는 한물간 동양화풍의 공포물이다. '흉가에 볕들어라' 등 꾸준히 공포 연극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이해제(희곡)와 이기도(연출) 콤비의 신작이다.

어느 여름 낮 놀이공원 괴기전(怪奇殿.귀신이 사는 집) 행사장에 들어간 구두 미화원 소년 등 인간군상들이 길을 잃고 헤매다 불교의 '지옥도' 같은 공간에서 죄의 대가를 심판 받는다는 이야기다. 이곳에서 염라대왕을 비롯한 10여 명의 대왕은 지옥에 떨어진 이들을 차례로 벌한다. 피 흘리는 인형 등 특수효과가 공포감을 더한다.

무서워하면서도 이런 공포를 즐기려 드는 것은 사람들의 '이상심리' 인가. 아니다. 우발적이지 않은, 가공된 공포에서 느끼는 묘한 카타르시스. 그게 공포체험에 열을 내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 Just feel it!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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