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추징액 늘린 '기업·세무 회계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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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롯해 세금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기업회계와 세무회계의 차이' 다.

기업회계는 주주.채권자.투자자에게 경영과 관련한 각종 재무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돈이 드나드는 입출금 내역과 매출.손익을 쉽게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사업자들이 쓰는 복식부기 장부도 기업회계의 하나다.

하지만 세무회계는 목적부터 다르다.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기업회계를 세법상 기준에 맞춰 일부 수정한 것을 말한다. 즉 기업들이 매년 주주총회용 결산을 할 때는 기업회계가, 3월말 법인세 신고를 할 때는 세무회계가 적용되는 셈이다.

세무회계 때에는 기업회계상 비용으로 처리한 항목 가운데 세법상 비용(손금)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들을 골라서 빼내는 작업(손금 불산입)이 주종을 이룬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컨대 원자재.상품구입.시설투자비처럼 명확한 부분을 제외한각종 회의비.영업비.활동비들이 세무회계에서 주로 빠지는 부분이다. 또 자기주식 처분 금액, 유가증권의 처분 차액과 같은 자본거래상 이익은 기업회계에서는 자본잉여금으로 잡히는 데 비해 세무회계에선 소득(익금)으로 본다.

세무회계는 '순자산 증가의 원칙' 아래 영업활동이든 자본거래든 기업의 총자산이 늘어난 부분을 소득으로 간주(물론 예외도 있음)해 여기에 법인세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업체의 폐수배출 부과금과 같은 벌금 성격의 지출도 기업 입장에선 돈이 지출됐으므로 비용이지만 세무회계에선 이를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세무회계는 단순히 회계원칙을 떠나 소비성 지출 억제나 무분별한 투자의 방지, 건전한 재무구조 유도와 같은 정책적 목적을 위해서도 활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차이점은 관련 법규에도 자세히 설명돼 있고, 기업의 재무 담당자들도 알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이같은 세무조정의 의무도 기업에 있다. 기업회계에 따른 결산보고서를 국세청에 제출하면 국세청이 이를 본 뒤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복잡한 세법조항들을 일일이 뒤적이며 세무회계에 따라 항목을 수정하고 과표.세액 등도 스스로 계산해서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법규정을 잘못 해석했거나 실수하면 나중에 세무조사 등을 통해 가산세까지 붙여 많은 세금을 물어야 하므로 기업들은 보통 전문적인 회계법인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이 과정도 쉽지 않다. 법인세법이 다른 세법처럼 열거주의(법에 구체적으로 나열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원칙)가 아니라 포괄주의 원칙(열거돼 있지 않아도 법조항의 목적에 해당한다면 과세)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법에는 접대비를 '법인이 업무와 관련해 특정인에게 지출한 금액' 으로만 명시하고 어떤 경우가 특정인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과세당국과 납세자 사이에 시비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한 대기업 재무팀장은 "접대비라는 명칭 때문에 마치 기업이 술집에서 접대하는 비용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기업활동에 필수적인 판매비.교육비.격려금.경조사비.행사비용 등이 대부분" 이라며 "정상적인 기업활동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돈을 지출했는데도 세무회계에서는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수익으로 간주해 세금 신고를 해야 하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세무조사를 받았던 또 다른 기업의 관계자는 "거래처를 호텔로 불러 설명회를 연 비용도 접대비로 간주됐다" 며 "그 결과 매출액의 0.05% 한도(이 기업의 경우 연간 2억원)를 넘겨 가산세까지 포함된 많은 세금을 추징당했다" 고 말했다.

숙명여대 이광재(경영학) 교수는 "사실 세금추징과 관련한 논란은 기업회계와 세무회계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세무회계와 관련한 부분들이 불명확하고 과세 당국의 재량권도 큰 데서 발생한다" 면서 "예규.내부 지침은 물론 각종 세무조사의 자료들도 공개해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고 말했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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