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슈 인터뷰] 셜리 틸먼 미 프린스턴대 총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의 명문대학들이 미국 대학들과의 경쟁에 밀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영국 신문 더 타임즈가 선정한 전 세계 상위 50개 대학에서 미국이 20개를 차지했다.영국은 8개,프랑스 2개,독일 1개.영국의 토니 블래어 정부와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는 엘리트 교육을 부활·강화하는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다.전통주의자들의 저항으로 성과는 미지수다.

프린스턴대학은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초일류 대학이다.타임즈의 평가에서는 8위.그 대학의 셜리 틸먼 총장은 미국의 명문 사립대 최초의 여성 총장이요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분자생물학자다.

2박3일의 빡빡한 일정으로 서울에 온 틸먼 총장을 만나 유럽국가들이 벤치마킹하려는 미국의 대학 교육과,지금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줄기세포 연구의 앞날에 관해서 의견을 들었다.

-프린스턴대는 왜 세계적인 초일류 대학입니까.

"첫째, 프린스턴은 학생의 독자적인 연구를 크게 강조합니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독자적인 연구를 시작해 졸업논문을 쓰는 4학년이 되면 상당한 연구 결과가 축적돼요. 물론 지도교수가 밀착지도를 하죠. 둘째, 학생 대 교수의 비율이 6대1 이하라는 게 프린스턴의 자랑입니다. 교수와 학생이 아주 가까운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어요."

-한국에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많이 미국으로 유학을 갑니다. 그런 학생들을 유인하는 프린스턴의 매력은 뭡니까.

"프린스턴은 국제적인 안목이 있는 대학이에요. 우리는 재정지원을 하는데도 외국 학생과 미국 학생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프린스턴은 미국 대학들 중에서도 장학제도가 가장 잘 된 학교죠. 외국 학생의 비율은 학부생의 8~9%, 대학원생의 40%나 돼요.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학생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대학이 처음 생긴 13세기와 14세기 이후 19세기까지 대학교육의 목표는 국가와 교회의 지도자를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20세기에 와서는 경제활동에 기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으로 성격이 바뀌었는데 프린스턴대의 교육이념은 어느 쪽입니까.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이 프린스턴대 총장이던 시대에 프린스턴의 교육목표는 전문가나 기술자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과 비판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분석하는 사고력을 가르치는 것이었어요.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프린스턴 졸업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은 세계시민이 되기를 기대해요."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만드는 사람을 길러낸다는 의미로 들리는군요.

"프린스턴은 그 둘을 다 추구합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국무장관을 지낸 제임스 베이커 3세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 프로농구 선수 출신으로 상원의원이 된 빌 브래들리가 역사를 만든 사람들의 경우죠."

-프린스턴의 교육이념은 '나라와 세계를 위한 봉사'인데 그런 교육이념이 현실세계에 성공적으로 적용된 사례는 어떤 겁니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인간을 길러낸다는 의미인데 1990년대 졸업생 웬디 콥이 생각납니다. 그는 대학 졸업생들을 모집해 저소득층의 지역에 파견해서 어린이들을 상대로 교육활동을 벌이는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라는 프로그램을 창안해 실천한 인물입니다. 지금은 많은 대학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프로그램이 됐어요. 앞에 소개한 빌 브래들리와 테네시주 출신의 상원의원 빌 프리스트도 사회봉사 활동을 하다가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프린스턴 졸업생들이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활동하는 예는 무수히 많습니다."

-틸먼 박사께서는 총장 취임 후 정기적으로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돈벌이 위주의 시각을 벗고 비영리적인 공공부문에 관심을 가지라고 가르친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졸업 후의 진로를 폭넓게 생각하라고 말해요. 월 스트리트가 아니라도 활동무대는 넓다는 점을 강조하는 거죠. 월 스트리트로 가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남이 가니까, 그게 전통이니까 월 스트리트로 가는 건 다시 생각하라는 거죠."

-프린스턴에는 하버드.예일.스탠퍼드 같은 데 있는 경영대학원이나 법학대학원이 없는데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입니까.

"프린스턴대 이사회도 그 문제로 20년 이상 고민해 왔답니다. 전문대학원은 학교 재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러나 대학은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출 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준 높은 학부 교육과 대학원의 학술연구입니다. 우리는 이 두 분야에서 뛰어나기 때문에 굳이 전문대학원을 두지 않아도 된다고 믿어요."

-영국과 독일은 지금 전통적으로 평등주의에 기반을 둔 교육정책을 엘리트 중심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경쟁에 기반을 둔 미국 대학에 비해 크게 낙후됐다는 인식으로 초조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대학의 학생 선발을 둘러싸고 평등주의와 엘리트주의 사이에 논쟁이 뜨겁습니다.

"우리도 그 문제로 상당히 고민해 왔어요. 하버드와 예일도 마찬가지겠지만 프린스턴은 당연히 지적 능력이 뛰어난 학생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특권과 기득권을 누리는 계층에서만 신입생을 찾지 않고 사회 여러 계층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학생을 찾아왔어요. 대학 교육은 사회 계층 이동을 가능케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가 되어야 해요. 우리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사회.경제 계층에서 지적 능력이 뛰어난 우수한 학생을 폭넓게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프린스턴이 폭넓은 재정지원체계를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우리는 연구할 능력이 없는 학생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독립적인 연구는 진정한 노력과 재능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적 재능을 놓고 절대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일단 입학하면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게 해요. 프린스턴 학생의 절반 정도가 장학금 같은 재정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가정의 자녀들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잠재적인 지적 능력을 충분히 계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숫자(성적)만 가지고 학생을 뽑지 않는 거예요. SAT(수능시험)나 고교의 GPA(내신성적)만 갖고 학생을 선발한다면 특권층이나 돈 많은 집 자녀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할 겁니다. SAT 점수는 부모의 소득과 정비례하는 경향을 보여요. 우리는 학생의 지원서에서 리더십이나 색다른 능력의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고득점자가 많은 일부 고교의 학생을 집중적으로 뽑기보다는 다양한 학교와 사회계층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려고 노력합니다."

-틸먼 박사의 전공분야로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틸먼 박사는 치료 목적의 배아복제는 찬성하고 인간복제에는 반대하는 것으로 압니다. 배아복제에서 인간복제까지는 가까운 거리 아닙니까. 가령 인간복제는 금지하되 배아복제는 허용할 경우 몰래 인간복제를 강행할 과학자와 의사가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모든 과학 연구나 기술은 좋은 목적에 사용할 수도 있고, 나쁜 목적에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미생물학을 예를 들면 결핵 같은 감염 질환을 퇴치하는 약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고 생물무기 개발에 악용되기도 하죠. 세포핵 이식을 통한 줄기세포 복제와 인간 복제는 근본적으로 같은 기술인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려 깊고 신중한 규제로 배아복제를 악용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정부가 규제하는 방법이죠. 과학 발전이 인류에 해를 끼치게 해서는 안 돼요. 이런 차원에서 규제가 필요하고 배아복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합니다. 철저한 규제 아래 치료목적의 배아복제는 허용해야 합니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세계 최초로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해 배아줄기 세포 배양에 성공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초기 단계이긴 해도 특정 개인의 면역체계에 맞춘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건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만 분명히 해둘 것은 줄기세포 연구를 실제 치료에 응용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는 겁니다."

-종교적인 이유와 윤리적인 근거로 배아복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간단하지는 않을 텐데요.

"미국에서 여론조사를 하면 응답자의 70%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할 겁니다. 100%의 찬성은 아니지만 미국인의 70%가 찬성한다는 것은 다수가 배아복제에 큰 윤리적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죠. 그러나 윤리적인 문제를 놓고 사회가 둘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면 그걸 어떻게 풀어나갈지 현명한 답을 내놓기 어렵네요."

-인류는 바야흐로 새로운 생명공학의 시대를 맞는 것 같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세계 이곳저곳의 거리에서 빌 게이츠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많이 만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게이츠를 복제해 새로운 마이크로 소프트사를 세우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아요.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의 산물만은 아니니까요. 게이츠는 그의 부모의 유전자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과 시대의 산물이기도 해요. 유전자가 같다고 모두가 게이츠가 되지는 않아요. 모든 인간의 환경을 똑같이 만들 수는 없잖아요."

-틸먼 박사는 최초의 여성 총장으로 프린스턴대학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내가 여성이라서 변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를 하나 들죠. 내가 총장이 된 뒤 대학의 고위직 열두 자리를 새로 임명했는데 절반이 여성이었요. 뉴욕 타임스가 기사로 다룰 정도로 크게 주목받았죠.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았고, 우연히 그 절반이 여자였을 뿐입니다."

정리=박현영.하현옥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 틸먼 총장은

셜리 틸먼(58) 프린스턴대 총장은 2001년 프린스턴대 258년 역사상 여성으로 처음 총장에 올랐다. 총장에 임명되기 이전에는 이 대학 분자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분자생물학자로 1세대 줄기세포 연구학자로 꼽힌다.

포유류의 배아 성장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과학의 저변을 넓힌 것으로 유명하다. 남녀의 지놈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차이가 배아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해 왔다.

캐나다 출신으로 1968년 킹스턴의 퀸스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한때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2년간 교편을 잡기도 했다.

75년 필라델피아 템플대에서 생화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의 박사 후 과정에서 첫번째 포유동물의 복제연구에 참여해 새로운 발견을 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올렸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유전학.생화학.생물물리학을 가르치다가 86년 프린스턴대로 옮겼다.

인간 지놈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미국 국립연구위원 회원이며 NIH의 지놈 프로젝트 자문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박현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