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원인 규명” 한·미 합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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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군 고위급 회의가 5일 국방부 지휘부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상의 합참의장(왼쪽)과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이 5일 한·미 군 고위급 협조회의에서 천안함 인양과 폭발 원인 규명에 대해 “최고 수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한·미 양국에 정치·군사적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한국으로선 군함과 대형 선박의 인양 경험이 풍부한 미 해군의 노하우를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와 인양 작업에 활용할 수 있다. 또 ▶조사의 객관성이 확보되고 ▶침몰 원인에 대해 한·미가 일치된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며 ▶북한의 도발로 밝혀질 경우를 대비해 한·미동맹의 견고성을 과시할 수 있다. 미국도 거의 마찬가지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에 대한 한·미 간 불협화음을 해소할 수 있다. 한·미 양국이 침몰 원인에 대해 엇박자를 내게 되면 공동보조를 취하기 어렵다. 북한과 국제사회에 대해 한·미동맹에 빈 틈이 없다는 점도 각인시킬 수 있다. 고려대 김성한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는 “사건 초기 미국 정부에서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낮게 보거나 배제하는 듯한 발언들이 이어지면서 미국 인사들 사이엔 ‘미국이 의도적으로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깎아내리는 인상을 주고 있다. 자칫 한국의 오해를 불러 제2의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 2일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한을 기점으로 우리 정부 조사에 힘을 실어주고, 워싱턴은 서울과 같은 편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건 초기 “북한군의 특이 동향이 포착되지 않았다”고만 밝힌 뒤 침묵을 지켜온 샤프 사령관이 5일 우리 군 수뇌부와 합동회의를 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다짐한 것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란 지적이다.

미국은 군사적 측면에서도 침몰 원인 조사와 인양에 참여할 필요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군사 전문가는 “천안함 침몰 원인으로 북한의 어뢰·기뢰 등 공격 가능성이 부상함에 따라 미군도 정확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관심이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해군 함정이 어뢰 등의 폭발물로 침몰된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천안암의 침몰 원인이 북한의 사출형 기뢰 등 공격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면 이는 전 세계 해역에서 함정들을 전개하고 있는 미 해군에도 새로운 위협이 될 것으로 미측이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또는 기뢰라면 이 무기체계가 중동이나 테러 집단 등에 수출돼 중동 해역의 미 해군 함정을 공격할 수도 있다”며 “이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수출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해군의 경우 2000년 예멘 아덴항에서 급유를 받던 8600t급 구축함 ‘USS콜’호가 알카에다 요원 2명이 몰던 자폭 보트의 공격을 받아 선체에 직경 10여m의 구멍이 뚫리고 수병 17명이 숨진 사례가 있다. 그러나 천안함처럼 정체 불명의 외부 충격으로 침몰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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