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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정보부자와 정보빈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정보 격차에 대해 『단절(Disconnected)』이라는 책을 쓴 레시는 e-메일과 국제전화를 하고 BMW를 타면서 컴퓨터 사업을 하는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정보부자와 아무리 노력해도 막노동 일조차 발견하기 힘든 같은 나라의 정보빈자를 비교하면서 책의 첫머리를 연다.

다른 모든 변화와 마찬가지로 정보기술도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기회와 위험이 균등하지만은 않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해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정보부자와 그렇지 못한 정보빈자 사이의 정보 격차 혹은 디지털 격차가 소득 격차로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정보 격차는 국가.계층.연령.남녀.도농(都農) 사이에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정보화가 진행된 지난 25년간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노동자의 평균 임금 격차가 40대 1에서 4백대 1로 벌어지는 등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하락했다.

지금 미국이나 한국은 국민의 절반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지만, 7억5천만명이 사는 아프리카에는 도쿄(東京)보다 적은 1천4백만대의 전화가 있으며 인터넷 사용자는 1백만명, 즉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7백50분의1에 불과하다.

디지털 격차에 대해서는 낙관론이 우세하다. 전화도 처음에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사람들이 다 사용하듯이, 컴퓨터와 인터넷도 결국 컴퓨터 가격과 인터넷 접속 가격이 떨어지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사용하는 '가전제품' 이 되리라는 예측에는 분명히 일리가 있다.

미국의 경우 적극적인 정책을 편 결과 실제로 지난 2년 사이에 정보 격차가 감소했다는 보고도 나왔다.

그렇지만 인터넷과 전화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터넷이 가진 정보의 신속한 탐색과 저장.분배 기능을 잘 사용해 고급 정보를 취합하고 이를 엮어 부가가치가 높은 새 지식을 만들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게임과 오락을 즐기고 음란물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둘 다 인터넷에 접속하지만 전자가 지식혁명 시대의 새로운 권력층으로 부상하는 반면 후자는 새로운 종류의 빈민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디지털 격차에 대한 접근과 정책은 접속(access)이 아니라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국가가 이를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개인과 대학.정부가 힘을 합쳐 인터넷을 고급 정보가 충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세 가지 가능성만 짧게 언급하려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직 한글 사이트에는 '도서관' 에 비견할 학술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를 담은 자료가 영문 사이트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부족하다. 국내 대학이 대학교수들로 하여금 이미 출판한 논문이나 책의 챕터 등을 인터넷에 올려 이를 수업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장려하기만 해도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고급 정보는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다.

둘째는 각 대학이 특성을 살려 시민 재교육을 위해 필요한 콘텐츠를 개발해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대학 내의 인문학자들과 엔지니어의 상호교류를 기반으로 시민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공공기관으로서 대학의 위상과도 부합하며 위기를 맞고 있는 인문학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부와 교육부가 힘을 합쳐 정보기술 교육에 대한 무료 온라인 사이트를 여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정보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지불하는 몇백만원의 수강료는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턱없이 비싸고, 정부의 지원금은 1년에 1만명 정도밖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접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고급 정보가 많아야 새로운 지식도 나올 수 있다.

洪性旭 <토론토대 교수.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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