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통신] 분당 동사무소마다 주민 사랑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뚱뚜둥~뚜우웅~띵. "

'4개월만의 금비' 가 대지를 적시던 지난 18일 오후. 분당신도시 정자1동 동사무소 한쪽에서 들려오는 가야금 소리가 우중(雨中)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떠난 임을 그리워 하는 듯한 애달픈 산조 가락이 끝나자 자진모리가 흥겹게 이어졌다.

"어허, 날씨도 장단을 맞추시네!"

강사가 한마디 하자 가락에 빠져 있던 주부들이 까르르 웃었다. 농담도 잠시, 가야금 소리는 두 시간이 넘게 울려퍼졌다. 주민등록등본을 떼거나 혹은 쓰레기 좀 치워달라는 민원 때문에 한 두번씩은 들러봤을 동사무소. 일이나 생겨야 찾았던 이 곳이 요즘 주민들로 북적인다. 분당에서는 동사무소 일부를 개조한 '문화의 집' 이 큰 인기다.

주부들은 "삭막한 신도시에서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고 동네 아주머니와 안면 트고 지내니 더없이 즐겁다" 고 자랑한다.

정자1동 문화의 집에서 가야금을 두달째 배우고 있는 윤충자(50.한솔마을)씨는 "학원에서는 20만~30만원씩 내야하나 이곳에선 무료다" 며 "선생님이 가야금의 명인이어서 더 기쁘다" 고 말했다. 윤씨는 7월에는 장구반에도 들 생각이다.

문화의 집은 다양한 강습 뿐 아니라 도서대여.비디오 상영.아가방 운영도 함께 해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고 있다.

◇ 동사무소에 가라=정자동.서현동.이매동.구미동 등 분당지역 14개 동사무소에서 문화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동마다 개설한 프로그램이 다르고 강습 기간도 1~3개월로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 수시로 참여가 가능하고 분당 주민은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어느 곳이든 이용할 수 있다. 강사진도 지역 주민들이 대부분이며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야탑2동 이정하 동장은 "분당에는 전문직 종사자가 많아 강사 섭외에 어려움이 없다" 며 "오히려 자신들의 지식을 남들에게 전수하고 싶어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고 말했다.

◇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문화의 집' 들은 주민들이 원하거나 인기있는 프로그램을 우선적으로 개설하지만 수채화.도자기 만들기.바둑교실.수지침 등은 공통적으로 열고 있다.

정자1동은 독특한 프로그램이 많아 용인.수지 주민들까지 원정올 정도다. 만돌린.가야금 교실에 이어 자체 오케스트라까지 결성했고 부부 스포츠댄스.데생도 희망자가 줄 서 있을 정도다. 서현1동은 판소리 명창 문효심씨의 판소리교실이 소문난 강의다. 동화 읽는 어른들, 일어.영어동호회 회원들은 일주일에 한 차례 모여 토론하는 등 동호회 모임도 활발하다.

◇ 부대시설도 활용하라= '문화의 집' 모두 인터넷용 컴퓨터를 4~6대씩 설치했다. 방명록에 이름만 남기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 각종 서적과 신작 비디오를 비치해 무료로 대여한다.

정자2동.서현2동.야탑2동 등은 헬스기구를 마련했다. 정자1동 문화의 집 담당자 이종빈씨는 "주부들이 지루하게 하루를 보내지 말고 동사무소에 나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대화도 나눠보면 좋을 것" 이라고 권유했다.

박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