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감동을 잊은 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귀경길, 비행기 창밖이 갑자기 훤해진다. 아, 저 서해의 낙조, 온 바다, 아니 천지가 장엄함으로 물들었다.

황홀하다 못해 숨을 쉴 수가 없다. 잡지를 뒤적이고 앉은 옆자리 젊은이에게 저걸 보라고 일렀다. "뭐 말입니까?" 무뚝뚝한 반응. 창밖을 손으로 가리켰다. "해 말입니까?" 역시다. 그러다 내 옆얼굴을 봤던지, "아, TV에 나온 사람 아닙니까?" 그제야 감격한(?) 모양이다. 난 아무 대꾸도 안했다.

요즈음 젊은이는 감동할 줄 모른다. 지난 봄에도 안타까운, 오히려 슬픈 체험을 했다. 학회를 마치고 선운사.백양사를 둘러왔다. 벚꽃.진달래.개나리가 한꺼번에 만발했다. 하나만도 넋을 잃을 판인데, 거기다 동백까지, 숨이 멎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한데 우리 젊은 과원들은 마냥 낄낄대기만 했다. 그 날은 달도 밝았다. 어찌 잠이 오랴만 만취가 된 젊은이는 코를 골고 있었다. 화가 나 걷어차고 싶었다. 이튿날 내장산의 새벽, 단풍 순이 파랗게 막 나오고 있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니 천지가 푸른 기운으로 넘실거린다. 온몸에 신선한 기운이 감돌고 영혼까지 맑아진다. 젊은 과원들은 그냥 키득거리기만 하고.

감동을 잊은 건지 아예 감동할 줄 모르는 건지, 딱하고 안타깝다. 감성이 아주 메말라 버린 걸까. 도대체 잔잔한 감동이 없으니 그렇게 거칠고 과격해질 수밖에.

오빠부대의 광적인 환호만인가. 집단 히스테리, 운동장의 열기, 흥분도 광적이다. 우리가 한 골을 넣으면 온 동네 아파트가 들썩, 무너질까 겁난다. 그리고 졌을 때의 그 억울함이라니, 죄없는 의자를 부수고, 던지고, 선수를 폭행하고, 화풀이들을 한다. 아이들 싸움은 또 얼마나 잔혹한가. 린치, 몽둥이, 칼, 담뱃불로 지지고, 생매장, 토막 살인, 어디까지 가려는지 등골이 오싹하다.

환락가에도 광란의 밤, 현란한 조명, 찢어지는 굉음, 발악하는 노래, 광적인 율동, 흔들고, 비틀고, 그러고는 꼬박 광란의 밤을 지샌다.

왜들 이렇게 거칠고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돼 가는 걸까. 정말 걱정이다. 뭐니 해도 우리가 처한 환경이 젊은이의 심성을 난폭하게 만드는 원흉이다.

전쟁의 위험만인가. 클랙슨, 스피커, 매연, 선정적 자극, 치열한 경쟁, 스피드, 변화, 숨막히는 전철, 밀고 당기고, 쫓기고 누구도 이런 과잉 자극 속에 차분해질 순 없다. 공격중추가 자극되고, 아드레날린, 혈압, 맥박, 호흡이 빠르고 거칠고, 과격, 조폭, 숨돌릴 틈이 없다.

TV.비디오 모두가 과잉 흥분이다. 최근 히트한 대작영화 '쉬리' 'JSA' '친구' , 모두가 끔찍하다. 요란한 탱크, 굉음, 기관총, 잔혹한 살인, 그래야 흥행이 된다.

스릴.흥분만으로 부족하다. 충격적이고 끔찍한 것, 잔인.화끈.파괴.혐오.난폭, 최근엔 엽기적인 것까지. 이렇게 강렬한 자극이어야 겨우 중추가 반응한다. 그만큼 만성 자극에 시달려 왔기에 아주 면역이 됐다. 웬만한 자극으로선 안된다. 더 강한 자극을 주려다보니 이 지경까지 왔다. 다음엔 또 어떤 걸로 자극해야 할지.

과잉 자극, 과잉 흥분의 사회, 이게 현대 한국을 살아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다.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처방은 딱 한가지, 마음을 차분히 해야 하는 것! 심호흡, 명상, 잠시 멍청해지는 것도 좋다. 차에서 내려라.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여 보라. 꽃이 피고 지고, 맑은 물 흐르는 산골에 앉아 보자. 앙증맞은 들꽃, 새소리, 산바람, 그리고 햇빛에 하늘거리는 잎을 보라. 신비롭고 오묘한 색깔에 넋을 잃게 되리라.

호젓한 시골 밤길을 걸어보자. 이슬에 발이 젖고 풀벌레 울음소리를 듣노라면 메마른 가슴에 감성의 물결이 일렁인다. 자연에의 신비가, 삶에의 환희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게 진정 사는 기쁨이다. 그리고 과잉자극시대의 과학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젊은이에게 이런 경지를 느낄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