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주니어 골프 뒷바라지, 1년에 최소 600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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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최경주’를 꿈꾸는 이상백(11)군이 인천 영종도 드림골프레인지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인천=김상선 기자]

우리 아이를 ‘제2의 최경주’ ‘제2의 신지애’로 만들어 볼까. 골프를 좋아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겁니다. 프로골퍼들은 보기에도 무척 화려한 데다 쉽게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1년에 수천억원을 벌어들이기도 한다지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정상급 프로골퍼가 되기 위해 이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 golf&은 ‘주니어 골퍼들의 세계’를 들여다 봤습니다.

6년 정도 지원할 수 없으면 시키지도 마라

초등학교 4학년인 K군은 여섯 살 때부터 골프를 배웠다. 아버지를 따라 골프 연습장에 놀러갔다가 골프에 입문한 경우다. 개인사업을 하는 K군의 아버지는 K군을 정상급 프로골퍼로 키우기 위해 ‘올인’할 기세다. 한 달에 K군에게 들어가는 돈은 줄잡아 200만원. K군의 아버지는 “아직은 큰 돈이 들지 않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초등학교 시절엔 레슨비가 50만원 정도면 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 레슨비가 100만원 이상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골퍼 한 명을 키워내기 위해 한 달 동안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중학생의 경우 레슨비가 한 달에 100만~150만원 정도로 뛴다. 여기에 일주일에 세 차례 정도 9홀이나 18홀 라운드를 하면 이 비용만 한 달에 200만~300만원이나 든다. 골프 아카데미의 경우에는 주로 합숙훈련을 하는데 숙식비용까지 포함돼 있어 한 달에 350만~500만원을 내야 한다. 라운드 비용은 별도다. 결국 골프를 가르치는 데만 한 달에 최소한 300만~500만원 이상이 든다는 이야기다.

골프대회에 출전하는 데도 돈이 든다. 1년에 보통 10~15개 대회에 출전하는데 많은 경우엔 출전 대회 수가 20개를 넘기도 한다. 대회는 보통 3라운드(예선전 1라운드, 본선 2라운드)로 열린다. 그런데 대회 출전에 앞서 코스 답사 및 연습 라운드를 2~3차례 정도 해야 한다. 지방에서 열리면 골프장 근처에 숙소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이 비용을 모두 합치면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평균 200만원 정도가 든다. 제주도에서 열리는 대회의 경우에는 항공료가 추가되기 때문에 경비가 두 배 이상 들어간다.

추운 날씨속에서도 주니어골퍼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겨울이 되면 태국·필리핀·호주나 미국 등으로 해외 전지훈련을 보내야 한다. 전지훈련 비용은 2~3개월에 1000만~1500만원 선. 따라서 1년에 적게 쓴다고 해도 6000만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 1년에 1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부모도 있다.

K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유소연의 아버지 유창희(53)씨는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골프를 시키면 안 된다. 최소한 6년 정도는 아무 문제 없이 뒷바라지할 수 있는 ‘실탄’이 있어야 한다. 중도에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부모는 물론 선수들까지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해 고등학교 3학년 때 투어 프로가 된다고 가정하면 최소한 5억원 이상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90%가 아버지 영향으로 골프 입문

대한민국 골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바로 ‘아버지’다. 주니어 골퍼들의 입문 동기를 살펴보면 “아버지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골프 클럽을 처음 잡았다”거나, “골프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는 응답이 대부분이다. 주니어 골퍼의 90% 이상이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프로가 된 뒤에도 아버지들은 영원한 스승이자 든든한 후원자다. 아마추어건 프로건 국내 골퍼들에게 아버지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다.

‘골프 대디’들은 자신의 골프 열정을 고스란히 자식에게 쏟아붓는다. 주니어 골프 대회에 가면 아버지들이 줄담배를 피우면서 자녀의 플레이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부 대회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현장에서 나무라거나 부모들끼리 싸우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아예 부모의 코스 진입을 금지하기도 한다. 중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 C씨는 “누가 자식들에게 골프를 시킨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 지금이라도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그동안 투자한 게 아까워 그러지도 못한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골프로 승부를 걸 수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골프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정해심(51) 프로는 “자식에게 골프를 시켰다면 부모가 먼저 확고한 중심을 잡아야 한다. 1년의 계획을 세웠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며 “무조건 레슨비가 비싸고 유명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코치와 선수가 잘 맞아야 한다. 그리고 한번 맡겼으면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상비군은 돼야 희망이 보인다

몇 년 전만 해도 대부분 초등학교 4~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찍 시작하는 게 낫다’며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골프를 시키는 부모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2002년 초등학교 골프선수로 등록한 학생 수는 남녀를 합쳐 133명(남 94명, 여 39명). 하지만 지난해엔 388명(남 246명, 여 142명)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기준 중학교 등록선수는 모두 989명(남 638명, 여 351명). 고등학생은 1609명(남 1161명, 여 448명)이나 됐다.

그런데 투어 프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상비군이나 국가대표로 선발돼야 한다는 게 레슨 프로들의 설명이다. 상비군이나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한국 중·고등학교 골프연맹이나 대한골프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출전해 포인트를 획득해야 한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 시·도골프협회에 선수 등록을 해야 한다. 선수 번호를 받으면 중·고연맹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회원 가입(연회비 4만원)을 하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국가대표 상비군은 중·고연맹과 대한골프협회가 주최한 대회에 출전해 얻은 포인트를 합산해 선발한다. 무조건 모든 대회 성적을 합산하는 것은 아니다. 1년에 중·고연맹 대회 4개(가장 좋은 성적), 방학 기간 내 대한골프협회가 주관한 모든 대회와 방학기간 외에 중·고연맹과 대한골프협회가 주관한 대회 가운데 최고 성적 3개 대회를 합산해 상비군을 선발한다.

상비군 수는 초등부(5~6학년) 남녀 각 4명, 중등부 남녀 각 11명, 고등부 남녀 각 26명을 뽑는다. 국가대표는 상비군 가운데 대한골프협회가 주관한 14개 대회 가운데 대표팀 선발대회(8개) 성적을 합산해 남녀 상위 각 6명을 선발한다. 대한초등골프연맹 이영구 훈련원장은 “프로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보통 같은 학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야 한다. 대표팀은 몰라도 최소한 상비군은 거쳐야 대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주니어, 세계 최고 실력

주니어골퍼들이 가방을 메고 이동하고 있다.

골프 전문가들은 주니어 골프 실력만큼은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라고 말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부끄러운 현실도 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주니어 골퍼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한 달에 두 차례 정도 토요일 오전에만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전국에 골프부를 운영하고 있는 고등학교는 남자 60개교, 여자 30개교 정도 된다. 한국 교육의 현실상 골프와 학교 생활을 병행하다가도 결국엔 골프에 ‘올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니어 골퍼들은 어려서부터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골프와 씨름한다. 특히 부모 중 한 명이 붙어서 자녀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주니어 골퍼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들 반경 5m를 벗어나지 마라’는 말이 있다. 항상 곁에서 자식들의 연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하늘의 아버지 김종현(47)씨는 “부모들이 없으면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는 등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스스로 연습에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학교 수업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오전 수업만이라도 듣는 학생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공부는 등한시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최근엔 해외 진출을 꿈꾸며 어려서부터 별도로 영어 과외를 시키는 부모도 많아졌다. 유소연을 길러낸 아버지 유창희씨는 “최소한 오전 수업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도 연습시간은 충분하다. 골프는 마라톤과 같다고 보면 된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성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문승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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