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백 년을 내다보는 행정개편이 되도록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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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여야가 어제 지방행정 개편의 기본 방향에 합의한 것은 바람직하다. 합의의 골자는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 일부를 통폐합해 광역화하고, 통합된 자치단체에는 교육자치와 자치경찰 권한을 부여키로 했다. 또 특별시와 광역시 구·군의 기초의회를 없애고, 3487개 읍·면·동을 폐지하는 대신 주민자치기구를 두는 내용도 담았다. 4월 말 국회 본회의에서 관련 법안이 처리되면 100년 된 낡은 지방행정체제가 비로소 거대한 변화에 돌입하게 된다.

개편안은 전국 230개 시·군·구를 50~60개의 광역·통합 시로 조정한다는 큰 틀 아래서 추진됐다. 2014년 지방선거 이전까지 마무리해 통합시장을 뽑도록 한다는 것이다. 시·군 통합 문제는 주민 불편을 해소하고 행정기관의 군살을 뺀다는 차원에서 그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인구 수만 명에 불과한 지방 소도시마다 청사(廳舍)·소방서·선관위·경찰서 등 관공서와 공설운동장·문화회관 등 공공시설이 모두 따로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통합을 통해 이런 터무니없는 중복 투자를 막고 예산을 아껴 지역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사용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자치 구·군의 장(長)은 직선으로 선출하되 구의회는 설치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구·군의 기초의회는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시대를 열면서부터 논란이 됐다. 시기상조라는 반대가 많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명분에 밀려 도입됐다. 그러나 의원 겸직 금지 규정이 없어 지역 유지들의 감투와 이권 챙기기 자리로 변질됐다. 게다가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으나 연간 수천만원을 받는 유급제로 바꿔 지역 발전에 자발적으로 봉사한다는 당초의 취지조차 빛 바랜 상태다.

국회에서 법안이 마련돼도 갈 길은 멀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지역 정치인과 ‘향토(鄕土)’를 중시하는 주민의 반발을 예상할 수 있다. 도(道)의 존치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21세기는 도시 경쟁력의 시대다. 정치적 이해와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100년 앞을 내다보는 행정개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