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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학술대회 발표 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사회의 '작은 알갱이' 들의 삶과 문화가 세상을 바꾸어 왔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신문화사(New Cultural History)' 는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 1, 2일 서울 한양대 대학원 7층 화상회의실에서 '한국 노동자 계급의 의식과 문화' 라는 주제로 열린 노동사 학술대회는 한국에서 이런 신문화사 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와 역사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한 이 행사에는 국내외 노동사 연구자들이 대거 참석해 열기를 뿜었다.

특히 국제 사회주의운동사 연구의 최고 권위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제사회사연구소 'CLARA(아시아에서 노동관계의 변화)프로젝트' 의 실무책임자인 라트나 삽타리와 마르셀 반 데어 린덴 연구원이 참석해 한국 노동사 연구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노동자들을 연구하되, 그 주변부 인물과 문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같은 시도는 우리 학계에선 처음이다. 한양대 임지현(사학과) 교수는 "같은 노동자의 투쟁에서도 중심과 주변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부각하려 했다" 며 "이는 제도나 주류 중심 노동사 연구에서 진일보했음을 뜻한다" 고 말했다.

이날 발표한 논문에서도 그런 의도가 잘 드러났다. 역사학연구소 김무용 연구원의 '한국 노동자 계급의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는 1910~50년 한국 노동자들의 이념적 변이과정을 날카롭게 지적해 큰 호응을 얻았다.

김씨는 일제시대와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한국 노동계급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과정을 노동계급의 정체성이 왜곡되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여기에는 '민족국가 건설=애국' 의 논리가 작용했다.

늘 사회적 소수였던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엿보였다. 국회도서관 김준 입법연구관은 70년대 여성 노동자의 일상생활과 의식을 '모범근로자 수기' 를 통해 분석했으며, 양육과 여성의 삶이란 이중부담을 안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정체성 혼란을 다룬 신경아(이화여대 여성학과 연구원)씨와 민주노총 보수화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눈길을 준 박영삼(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씨의 논문도 눈에 띄었다.

또한 1998년~2000년 현대자동차 노동운동을 식당 아주머니 등의 시선으로 포착한 '필름 리포트' 는 영상 역사학의 훌륭한 텍스트였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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