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Knowledge <146> 한국 화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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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돈의 역사는 그 나라 경제의 역사입니다. 1945년 일본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은 화폐를 만들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돈을 계속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50년 한국은행이 설립되면서 우리 돈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이것도 남의 나라에서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세계적인 위조방지 기술을 갖췄습니다. 디자인도 앞서갑니다. 우린 돈의 발전상을 소개합니다.

김종윤 기자

신사임당의 초상화가 들어간 5만원권이 지난해 6월 발행됐다.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직원이 5만원권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은행서 만든 첫 화폐, 6·25전쟁 통에 일본서 찍었답니다
주일 대표부의 이승만 초상화를 도안 모델로

한국은행이 설립된 것은 50년 6월 12일. 법률 제138호 ‘한국은행법’에 의해서다. 당시는 새로 화폐를 만들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통용되던 조선은행권(100圓, 10圓, 5圓, 1圓, 50錢, 20錢, 10錢, 5錢)과 일본 정부의 소액보조화폐를 승계했다. 한국은행은 조속히 새로운 화폐를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설립된 지 13일 만에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계획이 늦춰졌다.

새로운 화폐가 발행된 것은 그해 7월 22일 피란처인 대구에서다. 1000圓권과 100圓권을 발행했다. 새로운 화폐는 일본 대장성 인쇄국이 만들었다. 우리에겐 자체 화폐 제조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1000圓권의 도안으로는 주일 대표부 안에 걸려 있던 이승만 대통령 초상화를 활용했다. 100圓권에는 주일 대표부가 갖고 있던 책 중에서 골라낸 광화문 도안을 사용했다. 위조 방지를 위해 새 돈을 글자가 숨겨진 특수지에 평판 인쇄했다. 52년 10월 10일에는 500圓권과 새로운 1000圓권도 발행했다. 두 은행권도 숨은 글자를 넣은 특수지에 평판 인쇄됐다.

53년, 1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긴급통화조치

한국전쟁은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산업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물가는 급등했다. 타개책은 화폐단위의 변경이었다. 53년 2월 15일 화폐단위를 圓에서 ‘환’으로 변경(100圓→ 1圜)하는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했다. 2월 17일부터 ‘圓’ 표시 한국은행권의 유통은 중지됐다. 그동안 한국은행권과 함께 저액면용으로 통용돼 오던 7종류 조선은행권(10圓, 5圓, 1圓, 50錢, 20錢, 10錢, 5錢)과 일본정부의 소액보조화폐의 유통도 중지됐다.

이 조치는 우리나라 화폐의 완전한 독자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긴급통화조치에 의해 한국은행은 5종류의 은행권(1000환권, 100환권, 10환권, 5환권, 1환권)을 발행했다. 이 돈은 모두 평판 인쇄 방식으로 발행했다.

해방 이후 나온 어떤 돈보다 고급용지를 사용한 고 품질이었다. 형광잉크를 사용해 자외선을 비추면 붉은 바탕이 금빛으로 변하고 번호와 검은색이 갈색으로 바뀌었다. 1000환권, 100환권, 10환권은 색상만 다르고 크기와 도안이 같았다. 앞면에는 거북선을, 뒷면에는 한국은행 휘장을 도안 소재로 사용했다.

그런데 화폐단위가 圓에서 ‘환’으로 바뀌었는데도 이들 은행권에 인쇄된 한글 단위는 ‘원’이었다. 긴급통화조치 결정 이전에 다른 용도로 미국 연방인쇄국에서 만든 돈을 국내에 들여와 보관하다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미국연방인쇄국에서 제조한 돈은 얼마 사용하지 못했다. 53년 3월 17일부터 이 돈은 순차적으로 국내 제조 은행권으로 대체됐다. 새로운 돈에서는 화폐단위 표기를 환(HWAN)으로 바꿨다.

60년 8월 15일에 도안인물을 세종대왕으로 변경한 새로운 1000환권이 발행됐다. 61년 4월 19일에도 역시 세종대왕을 도안인물로 한 500환권이 나왔다. 두 돈에서는 ‘한국은행’ 표시를 한자에서 한글로 바꿨다.

62년, 산업자금 끌어쓰려 10환을 1원으로 바꿔

62년부터 한국 경제에 큰 획을 긋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됐다. 장롱 속에 보관하던 퇴장자금을 양지로 끌어들여 산업 자금으로 쓰는 게 필요했다. 62년 6월 10일 긴급통화조치가 발동된 이유다. ‘환’ 표시 화폐를 ‘원’ 표시로 변경했다(10환 →1원).

‘환 ’표시 화폐의 유통과 거래를 금지했다. 한국은행은 대신 6종의 새로운 은행권(500원권, 100원권, 50원권, 10원권, 5원권, 1원권)을 발행했다. 이때 발행된 은행권은 영국 토머스델라루사에서 제조된 것이다. 이 돈의 특징은 앞면 도안의 주소재로 인물초상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500원권은 남대문, 100원권은 독립문, 50원권은 해금강 총석정 등을 사용했다. 이렇게 쓰이던 영국 제조 은행권은 62년 9월부터 점차 국내 제조 은행권으로 바뀌었다.

65년부터는 한국조폐공사가 요판 인쇄시설을 도입한 것을 계기로 요판 인쇄 은행권 발행이 시작됐다. 요판 인쇄방식으로 인쇄하면 인쇄판 상 오목한 부분에 투입된 잉크가 강한 압력으로 은행권 용지에 인쇄됨으로써 잉크가 돌출된다. 이에 따라 촉각에 의한 돈의 구별이 가능해졌다.

70년대엔 5000원권, 1만원권, 1000원권 등장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거래 단위가 높아져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72년 7월 1일 5000원권(가 5000원권)을, 73년 6월 12일에는10000원권(가 10000원권)을 발행했다. 75년 8월 14일에는 거래의 편의를 위해 1000원권(가 1000원권)을 도입했다. 이로써 한국의 화폐가 10000원, 5000원, 1000원, 500원, 100원, 50원, 10원, 5원, 1원으로 액면 체계를 갖췄다. 이에 앞서 70년 11월 30일에는 100원화를, 72년 12월 1일에는 50원화를 발행해 종이 돈을 동전으로 대체했다.

73년부터는 화폐도안용 영정을 제작할 때에도 정부의 사전심의를 받아 표준화한 선현의 모습을 사용했다. 당시 국무총리 지시로 ‘선현의 동상건립 및 영정 제작에 관한 심의절차’가 제정됐기 때문이다.

80년대 500원 지폐를 동전으로 … 주화체계 완성

80년대 이후에는 화폐 체계를 정비하고 위조방지장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했다. 82년 6월 12일에 500원 은행권을 주화로 대체했다. 83년 1월 15일에는 주화 종류별로 다소 불일치했던 액면 간 도안의 구성을 통일해 100원화, 50원화, 10원화, 5원화, 1원화를 발행했다. 은행권은 83년 6월 11일에 ‘나 1000원권’과 ‘다 5000원권’을 발행하고 같은 해 10월 8일에는 ‘다 10000원권’을 발행했다. 80년대 후반 컬러복사기의 수입이 자유화하자 돈의 위조방지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그래서 이때부터 한국은행은 ▶부분노출 은선 ▶미세문자 ▶돌출 은화 같은 위조방지장치를 강화했다.

2009년 5만원권 발행, 첨단 위조방지장치 적용

2006년 이후에는 은행권에 첨단 위조방지장치가 적용됐다. 디자인 면에서도 예술적 세련미가 가미된 시기다. 2006년 1월 2일 ‘마 5000원권’을, 2007년 1월 22일에 ‘바 10000원권’ 및 ‘다 1000원권’을 발행했다. 2009년 6월 23일에는 새 고액원인 50000원권이 발행됐다. 10000원권이 처음 발행된 지 36년 만이었다.

이들 은행권에는 위조방지를 위해 ▶홀로그램 ▶입체형 부분노출 은선 ▶색 변환 잉크 ▶요판잠상 같은 첨단 위조방지장치가 새로 도입되거나 확대 적용됐다. 은행권의 크기가 축소돼 쓰기에 편리해졌고, 색상도 밝고 화려해졌다. 문자와 숫자, 총재 직인, 점자 같은 전체 도안 체제도 현대적 감각으로 대폭 바뀌었다. 또 과학·미술·사상 등을 나타내는 다양한 소재가 채택됐다. 바탕무늬도 참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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