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지하철역 2곳서 자폭 테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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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러시아 비상사태부 소속 구조대원들이 29일 수도 모스크바의 파르크쿨투리역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숨진 희생자의 시신을 운반하고 있다. 이날 출근시간대에 발생한 두 건의 지하철 자폭 테러로 40명이 숨지고 64명이 부상했다. [모스크바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가 또다시 테러의 피로 얼룩졌다. 모스크바 지하철 안에서 29일 오전(현지시간) 출근시간대에 2건의 자폭 테러가 연이어 발생해 테러범 2명 등 40명이 숨지고 64명이 부상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한국 교민 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사법 당국은 체첸 이슬람 반군들에 의한 자폭 테러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첫 폭발사고가 난 곳은 체첸 반군 진압을 주도하는 연방보안국(FSB) 건물 바로 옆의 지하철역이어서 FSB를 겨냥한 테러 공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FSB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이날 TV에 출연해 “끔찍하고 극악무도한 범죄가 저질러졌다”며 “사법기관이 범인 색출에 힘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테러범은 반드시 궤멸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출근시간대 노린 자폭 테러=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52분쯤 모스크바 최고 중심가에 위치한 ‘루뱐카’ 지하철역에 정차 중이던 전동차 안에서 첫 번째 폭발이 발생했다. 이리나 안드리아노바 비상사태부 공보실장은 “전동차의 둘째 객차에서 폭발이 일어나 열차 안에 있던 승객 등 2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한 목격자는 “전동차가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내리는 순간 ‘펑’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고 말했다. 루뱐카 역은 FSB 본부 건물 바로 옆에 있으며 크렘린궁에서도 2㎞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첫 테러 발생 약 40분 뒤인 오전 8시30분쯤에는 루뱐카 역에서 멀지 않은 ‘파르크쿨투리’ 역에서 또다시 폭발사고가 터졌다. 역시 멈춰서던 전동차의 둘째 객차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 13명이 사망했다. 병원에 호송된 부상자 중 3명이 추가로 숨졌다.

러시아 검찰은 승객들이 붐비는 출근시간대 지하철을 표적으로 한 자살폭탄 테러로 추정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당국은 연방정부와 친크렘린계 자치정부의 탄압에 불만을 품은 체첸 반군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유리 쇼민 모스크바 검찰국장은 “루뱐카 사고는 폭발물 벨트를 찬 테러범의 소행으로 보인다”며 “파르크쿨투리 폭발도 유사하다”고 말했다. FSB도 성명을 통해 2건의 폭발사고가 모두 여성 자폭 테러범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폭발 이후 루뱐카 역사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연기로 가득찬 역사에서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앞다퉈 탈출했다.

◆체첸 반군이 배후 가능성=하루 평균 5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모스크바 지하철은 자주 테러 공격의 표적이 돼 왔다. 2004년 2월 역시 출근시간대에 모스크바 남부 파벨레츠카야 지하철 역에서 여성 자폭 테러범이 폭탄을 터뜨려 39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부상했다. 푸틴 당시 대통령(현 총리)은 체첸 반군 지도자 아슬란 마스하도프를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다. 같은 해 8월에도 북동부 리즈스카야 지하철 역사 인근에서 한 여성 자폭 테러범이 폭탄을 터뜨려 10명이 사망했다.

러시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는 이슬람 자치공화국 체첸 반군들은 1990년대 중반과 말 두 차례에 걸쳐 연방정부와 전쟁을 벌였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체첸 반군 강경 진압을 모토로 집권한 푸틴 집권기(2000~2008년)에는 활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후 독립운동을 이끌며 각종 테러 활동을 주도하던 반군 지도자 마스하도프가 2005년 FSB의 공격으로 사망하고 또 다른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도 이듬해 역시 FSB의 작전으로 사살되면서 세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러시아 연방정부는 지난해 체첸에서의 대테러 작전을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크고 작은 테러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부터 체첸과 인접한 이슬람 자치공화국 잉구세티야와 다게스탄 등에서 폭력 사태가 빈발해 이 같은 혼란이 모스크바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유철종·이승호 기자


◆러시아에서 최근 발생한 주요 테러

▶2004년 8월: 모스크바 북동부 지하철역 부근 자폭 테러 10명 사망

▶2004년 9월: 북오세티야의 학교 인질극 진압 과정에서 인질 334명 사망

▶2008년 12월: 모스크바 남부 지하철역 전동차 폭발사고로 4명 사망

▶2009년 11월: 노보고로드주 폭탄테러로 급행열차 탈선 39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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