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태안의 기적’, 자랑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그러나 사고 후 대처는 딴판이었다. 미국은 의회가 발벗고 나섰다. 90년 유류오염방지법(OPA)을 제정해 이중 선체로 만든 유조선이 아니면 미국 해안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사고를 낸 회사엔 배상책임도 무한대로 지웠다. 그러자 민간 회사가 앞다퉈 사고대비책을 마련했다. 미국 정부도 값진 교훈을 얻었다. 갑자기 닥친 국가적 재난에 정부·민간 할 것 없이 사공이 북적대니 배가 산으로 갔다. 94년 미국 정부가 ‘유류 및 유해물질 유출로 인한 국가 재난 사태(SONS)’라는 규정을 만든 건 이 때문이다. 미국은 94년부터 이 규정에 따라 3년 단위로 국가 차원의 SONS 훈련을 해오고 있다.

22~25일 메인주 포트랜드에서 벌어진 ‘SONS 2010’ 훈련도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뒀다. 50여 조직에서 나온 650여 관계자가 포트랜드 현장 지휘통제본부에 모여 소통 훈련을 했다. 상급기관이 있는 워싱턴·보스턴과도 수시로 화상회의를 통해 정보를 공유했다. 메인주는 이번 훈련을 1년 반 전부터 준비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훈련에 반영했다. 나흘간의 훈련 후 1년 동안은 내부 평가를 진행한다. 보고서는 대통령에게도 올라간다. 다음 훈련에 참고하는 건 기본이다.

씨프린스호 사고 후 한국도 미국 제도를 본떠 왔다. 그러나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터지자 정부의 재난 대처 능력은 금세 탄로났다. 서울의 국토해양부와 현장의 해양경찰청·지방정부는 허둥대기만 했다. 피해자 보상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었다. 해안 기름띠 제거조차 150만 자원봉사자의 손을 빌렸다. 더욱이 우리나라 해안엔 아직도 홑겹 선체 유조선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여수와 태안에서 두 차례 재앙을 겪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해군 천안함 사고에 정부는 이번에도 쩔쩔매고 있다. 재난 사고에 대비한 매뉴얼이 있기나 한 건지 묻고 싶다. 파도가 높은 바다에 고속정만 보냈다가 천안함엔 접근도 못하고 해경을 기다렸다니 하는 말이다. 선체가 가라앉기 전 부표(浮標)만 달아뒀어도 구조에 필요한 시간은 벌었을 게 아닌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됐다고 대통령이 만세삼창을 했던 장면이 민망할 따름이다.

이번 기회에 정부에 귀띔해줄 게 하나 있다. 앞으론 어디 가서 ‘태안의 기적’ 자랑일랑 제발 하지 말라는 거다. 방호복도 갖추지 못한 자원봉사자가 유해물질 범벅인 기름을 맨손으로 걷어내는 모습을 정부가 팔짱 끼고 본 것도 모자라 장려하기까지 한 건 자랑이 아니라 국가 망신이다. <포트랜드 sons 훈련 현장에서>

정경민 뉴욕 특파원

알려왔습니다 홑겹선체 유조선과 관련, 국토해양부는 “국제협약에 따라 2005년부터 홑겹선체 유조선의 운항을 순차적으로 금지해 왔고, 내년부터 전면 금지된다”고 알려왔습니다. 또 재난사고 매뉴얼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1991년부터 국가긴급방제계획을 수립해 매년 민관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