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뮤직 다이어리] '언덕 위 지하실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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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젊은 예술가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말줄임표가 된다. 끝나지 않는 여운을 가진 기나긴 말줄임표. 생전의 그를 흠모했던 이들은 채 완결되지 못한 그의 일생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과오의 진흙은 요절이라는 이름의 흰 눈에 덮여 말끔히 사라지고 추억만이 남는다.

고대 로마에서 위대한 황제가 서거하면 원로원에서 신격화했듯 지금의 음악 팬들은 요절한 뮤지션의 이름을 전설의 만신전에 올리곤 한다.

1970년대, 27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전설적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도어스의 짐 모리슨, 그리고 재니스 조플린은 '3J'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추모의 대상이 되고 있다. 총성과 함께 비명에 간 존 레넌의 죽음은 어떤 위대한 정신의 소멸과 같았다.

그런지 록으로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됐던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10년 전 돌연히 스스로 삶을 등졌을 때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은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약 1년 전, 인터넷을 타고 급전된 한 뮤지션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이름은 엘리엇 스미스(사진). 그는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한 시대를 이끌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여린 감수성과 곧 사그러질 듯한 목소리, 그리고 삶의 아픔이 오롯이 밴 가사로 적지 않은 청춘남녀들의 심장에 숨겨진 상처를 보듬었던 음악 치유사요, 음유시인이었다.

'타이타닉'이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98년, 그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굿 윌 헌팅'에 삽입된 'Miss Misery'를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부르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것은 좌절과 분노의 그런지 록이 열어젖힌 90년대를 이제 감성과 취향이 이끌어갈 것임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총 5장의 앨범에 이어 새로운 작품 작업을 마무리하던 2003년 10월 21일, 그는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

엘리엇 스미스는 그렇게 덧없이 갔지만 그의 유작은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를 찾아왔다. 앨범의 제목은 '언덕위 지하실에서(From A Basement On The Hill)'. 90년대 후반 이후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둔 그였지만 정서는 여전히 어두운 지하실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련해진다. 그러나 앨범에 담긴 15곡의 노래는 유언이 아닌,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모색하는 활기가 넘친다. 이에 다시 가슴이 아련해진다. 앨범을 다 들으면 한 시대, 아름다웠던 90년대에 대한 소회가 몰려든다. 또 한번 가슴이 아련해진다. 굿바이, 엘리엇 스미스. 아듀,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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