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문화재청장 돼도 여전한 '유홍준 입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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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재사들이 즐비한 문화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입심'중의 한 사람이다. 원래 미의 흐름을 연구하는 미술사학자로 끊임없이 탐구하는 데다 그 결과를 어떤 식으로든 토해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천성 덕분일 테다.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200만부를 훨씬 넘겨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게 그 증거다. 그 때문에 그를 아끼고 좋아하는 이들은 그가 대학을 떠나 상대적으로 빡빡한 문화재청장으로 가는 걸 뜨악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취임 두 달이 지난 지금 그의 '천석고황'이 다시 발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전 직원을 몰아 경주 남산과 통도사를 답사하더니 이달 들어 본격적으로 특유의 입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1일 오후 5시 정부 대전청사 후생동 대강당. 문화재청 직원을 포함해 전국에서 몰려든 800여명의 '학생'들은 그의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숨 죽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 문화를 보는 눈'이란 타이틀로 이뤄진 이날 강의의 주제는 '고려청자와 상감청자'.

"여러분 청자의 청이 그린 청입니까, 블루 청입니까? 아마 중학교에서 물상시간에 졸지 않은 사람이면 산화철의 환원과정에서 황변(黃變) 녹변(綠變)쯤은 다 배우셨을 거예요. 그런데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가끔 청자에 대해 '가을하늘'운운하는 걸 보면…, 청자 코빼기도 본 적이 없는 거죠." "이건 누가 봐도 20대 여인을 닮았죠? 하지만 이걸 보세요, 비슷한 모양이라도 분명 40대 아닙니까. 이런 게 바로 양식의 변천이란 겁니다."

슬라이드 외엔 특별한 원고도 없이 진행됐지만 청중은 때때로 웃음과 고개를 끄덕임으로 요해를 표했다. 예정된 1시간30분을 20여분이나 넘겼음에도 꼼짝않던 '학생'들은 강의가 끝나자 그에게 달려들어 사인을 요청하고 인사를 나눴다. 초등생부터 주부.고교 교장까지. 쪼들리는 공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벌인 이날 굿판에 유 청장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한편 매주 월요일 오후 5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이 강의는 다음달 27일까지 모두 여덟차례 예정돼 있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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