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개혁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9호 33면

2008년 11월 6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가 승리를 거둔 지 이틀 뒤다. 이날 뉴욕 타임스엔 눈길 끄는 한 컷짜리 시사만평이 실렸다. ‘오바마 승리’라는 헤드라인의 신문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오바마. 그 뒤에서 오바마를 내려다 보고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조각상엔 이런 말풍선이 달렸다.

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아마도 넌 세상을 영원히 속일 수 있을 것 같군.”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알려진 만화작가 글렌 매코이의 작품이다.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링컨의 말을 살짝 비튼 것이다. 매코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을 거다. ‘넌 대통령이 됐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하지만 사람들은 네가 뭔가 할 거라고 믿겠지. 그렇게 믿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

이런 풍자가 나온 건 오바마를 둘러싼 인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집권 초기부터 ‘그리 참신하지 못하다’ ‘과거 정권에 한 다리 걸쳤던 사람도 끼었다’는 말이 나왔다. 금융위기에 직접은 아니라도 일말의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도 있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의 면면을 보면 그게 이해된다. 그중 윌리엄 도널슨 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집안과 오랜 친분이 있다. 헨리 키신저가 국무장관이었던 시절엔 그 밑에서 차관을 지냈다. 그가 SEC 위원장으로 있을 때 해놓은 게 대대적인 규제 완화다. 특히 금융회사가 남의 돈으로 위험한 돈놀이를 할 수 있도록 차입비율 규제를 확 풀었다. 이게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불을 지른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가 투자은행 ‘도널슨 루프킨 앤드 젠리트’의 창업자였다는 점도 오바마 진영에 썩 어울리는 경력은 아니다.

또 두 재무장관 경력자인 로버트 루빈과 로런스 서머스는 어떤가. 이들은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사이에 방화벽을 쳐놓은 글래스-스티걸법을 없애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법이 사라지는 바람에 월가 금융사들이 큰 위험에 노출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밖에 모건스탠리의 경영진으로 활동하던 로라 타이슨 경제자문위원이나 리먼브러더스의 피터 피터슨 전 회장에게 발탁된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도 월가와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다. 오바마가 월가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선이 나온 배경이다.

게다가 오바마는 선거 때부터 유대계 자금에 의존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얏트호텔 상속녀인 페니 프리츠커가 선거자금 총책을 맡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인 프리츠커는 시카고의 유서 깊은 부호 가문 출신이다. 프리츠커라는 이름은 2007년 워런 버핏이 프리츠커 가문 소유의 마몬그룹 지분 60%를 45억 달러에 인수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됐다.

바로 이런 점들을 매코이는 한 장의 그림에 담아낸 것이다. 하지만 요즘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을 추진하는 걸 보면 매코이의 걱정은 접어둬도 될 듯하다. 지난 100년 동안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개혁을 해냈으니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