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비극 겪은 독일선 '우리 독일인'이란 말 못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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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20면

금지어는 표현의 자유와 상극이다. 헌법재판소가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체제에 있어서 불가결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금지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하겠다. 금지어가 많은 것은 그만큼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징표다.

법의 눈으로 본 금지어

요즘 표현의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인터넷 규제에 대한 불만이 많다. 사이버모욕죄 도입 시도,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되었던 미네르바 사건, 인터넷 본인확인제 확대 실시 등을 거론하면서다. 또 인터넷 포털에서 글이 사라지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바로 금지어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은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는 점에서 최근 현상은 우려할 만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 역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금지어는 일종의 필요악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소중한 다른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내가 떠들고 싶다고 다른 사람을 근거 없이 헐뜯고 비난하는 일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공동체의 존립을 무너뜨리는 표현도 금지될 수 있다.

금지어는 사회적 산물이다. 한국 사회의 역사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외국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잘못이다. 예컨대 독일에서 “우리 독일인”이라는 말은 금지어다. 독일 교육제도를 실감나게 소개하는 한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 있는 대목이다. ‘우리’를 앞세워 이웃을 짓밟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정권에 대한 역사적 반성의 소산이 금지어로 나타난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언급할 때면 으레 미국의 사례를 드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비교는 곤란하다. 미국 헌법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반면 우리 헌법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헌법상 권리처럼 제한될 수 있다. 제한의 목적과 정도가 문제될 뿐이다. 금지어도 마찬가지다. 일률적으로 부당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금지어의 종류, 금지의 방법과 정도, 금지의 주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한국의 인터넷 금지어 체제는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고 본다. 금지어의 종류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 범위가 불명확하고, 공권력이 전면에 나서 금지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현재 인터넷에서 유통이 금지되는 언어는 정보통신망법 제44조에 ‘불법정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고 있다. 음란 표현, 명예훼손 표현,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이 대표적인 불법정보다. 성인에게 허용되지만 청소년에게는 금지되는 청소년 유해매체물은 연령 확인이나 표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불법정보가 된다. 이 정도의 금지는 공동체가 존립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위 법문은 제9호에 ‘그 밖에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교사 또는 방조하는 내용의 정보’라는 포괄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그래서 자의적인 법 집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위 조항은 테러나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를 교사하는 경우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불법정보의 판단 주체가 행정권이라는 데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스스로를 민간기구라고 부르지만 실은 행정기관이다. 위원은 정무직 공무원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위원회 경비는 기금 또는 국고에서 지급된다. 위원회는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불법정보를 심의한다. 후견주의(paternalism)가 엿보이는 비민주적 심의 목적이다.

위원회는 인터넷사업자나 게시판 관리운영자에게 해당 정보를 삭제하거나 해당 사이트를 접속 차단하라는 시정요구를 할 수 있다. 시정요구는 외형상 자율사항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인터넷사업자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위원회는 방송통신위원회로 하여금 해당 정보의 거부·정지·제한의 명령을 내리도록 요청할 수 있다. 공권력의 후원을 받는 자율은 자율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율 규제라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인터넷 포털은 사이버 공간을 정화하기 위해 금칙어를 스스로 설정해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은 어떤 언어가 금지어인지 구체적으로 공시하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 이용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자기 글이 삭제되거나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못하는 일을 겪는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정부 검열이 문제였다면, 인터넷 시대에는 사업자가 실시하는 사적 검열이 더 큰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의 인터넷법학자 로런스 레시그 교수는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방법으로 가격·규범·법, 그리고 코드(code)를 제시한 바 있다. 구조가 바뀌면 인간 행동도 바뀌기 마련인데, 특히 인터넷 시대에 이용자는 자신도 모르게 작업 환경, 즉 코드 변화에 따라 자기 행동을 제한하는 일이 발생한다. 현재 인터넷 포털의 금칙어 구조가 대표적인 코드 규제인 셈이다.

금지어는 금지를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과 그로 인해 제한되는 표현의 자유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설정되고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 금지어는 우리 헌법이 기본권 보장에 요구하는 ‘최대한 보장의 원칙’에 따라 최소한 규제되는 것이 맞다. 둘째, 금지어는 사회 구성원의 참여를 통해 사회적 합의로 설정돼야 한다. 정부뿐 아니라 인터넷 포털도 금칙어의 내역을 공개하고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사적 검열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셋째, 금지어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공권력은 가격·규범·구조 등 다른 수단을 모두 행사하고 난 뒤 보충적으로 발동되어야 한다. 넷째,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이루어지는 금지는 불법정보의 확산으로 피해가 크게 확산되는 긴급한 사정이 있을 때로 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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