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천년 만의 부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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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02면

1011년 거란이 고려를 침범합니다. 당시 고려의 왕 현종은 이 국난을 부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려 했죠. 이 해부터 시작된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은 선종 4년인 1087년 완성됩니다. 그 뒤 몽고가 침입하자 고려는 다시 부처님의 말씀을 나무에 새기기 시작합니다. 경판의 수가 8만1258판이나 된다는 ‘팔만대장경’입니다.

1011년 초조대장경 발원부터 1251년 팔만대장경 완성까지 무려 240년간 고려인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엄청난 작업을 해냈을까요. 국보 제32호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은 인류 최대의 지식문화이자 인류 최고의 목판 예술로 평가받고 있죠.

내년은 이 대장정이 시작된 지 꼭 10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의 국민보고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특강에 나선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대장경에는 한국인이 가진 국난 극복의 DNA가 있다”고 강조했죠. 거칠기 짝이 없는 몽고군들의 말발굽 아래서도 우리는 오히려 ‘팔만대장경’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가 지적한 대장경의 의미는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위기 극복의 DNA’ 외에 ‘전통 계승 정신’ ‘인쇄문화의 새 패러다임 마련’ ‘관ㆍ민의 비전 공유와 협업 시스템’ ‘(문화유산의) 보존문화’ 등이죠.게다가 에어컨이나 제습기도 없는데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에코 테크놀로지’의 시조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1000년 전 목욕재계하고 묵묵히 작업에 나서고 있는 조상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우리는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도 이겨낸 민족입니다. 그 결과가 우리에게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펼치라고 웅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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