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7년 만에 시조집 '독작' 낸 박시교 시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 박시교 시인은 "고시조의 잣대로 현대시조를 재단하면 안된다" 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시조시인 박시교(59)씨는 한국 현대시조가 다다라야 할 곳은 결국 한 수로 이루어진 단시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조도 자유시처럼 짧을수록 좋은 것이고, 그런 면에서 둘째 수, 셋째 수로 이어지는 연시조는 거추장스럽다고 본다. 한편으로 박씨는 시조가 좀더 대중화하려면 엇시조.사설시조에 대한 실험과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엄격하게 지켜지는 종장의 음수율 '3.5.4.3'도 시의 맛을 살리고 시어를 바로 사용하려면 부분적으로 변형해도 좋다고 믿는다. 종장의 첫째 음보가 세 글자여야 한다는 규칙도 국문학자들의 고시조 연구 결과 확률적으로 세 글자가 많았다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씨가 7년 만에 출간한 세번째 신작 시조집 '독작(獨酌)'(작가)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그러나 일정한 선을 넘지는 않는 '둥글둥글한 엄격함'을 보여주는 시조로 가득하다.

"나무도 아름드리쯤 되면 사람이다/안으로 생각의 결 다진 것도 그렇고/거느린 그늘이며 바람 그 넉넉한 품 또한/격(格)으로 치자면 소나무가 되어야 한다/곧고 푸르른 혼 천년을 받치고 서 있는/의연한 조선 선비 닮은 저 산비탈 소나무/함부로 뻗지 않는 가지 끝 소슬한 하늘/무슨 말로 그 깊이 다 헤아려 섬길 것인가/나무도 아름드리쯤 되면 고고한 사람이다"('나무에 대하여' 전문)

아름드리 나무를 넉넉한 그늘과 생각의 결을 갖춘 사람으로 본 시인의 눈썰미도 눈썰미지만, 첫번째 행 3음보는 '되면'으로 2글자다. 다섯번째 행은 '3.4.3.4'가 아닌 '2.4.3.6'으로 읽힌다. 첫번째 행에 '고고한'을 끼워넣어 마지막 행을 처리한 솜씨도 눈길을 끈다.

"그리운 이름 하나 가슴에 묻고 산다/지워도 돋는 풀꽃 아련한 향기 같은//그 이름//눈물을 훔치면서 되뇌인다//어 머 니"('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전문)

'지상에서…'의 종장은 연 나누기, 띄어쓰기로 더 애절하게 읽힌다. 박씨는 '시인의 말'에서 "암 수술을 받고 8년을 살고 있다. 덤 인생이 한참 되었고, 거의 매일 술도 마신다. 시 쓰는 게으름만 빼고 여일하다. 이제부터 더 게으를 참"이라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