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박세당 가문 고문서 발굴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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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의 11대 종손인 박찬호(79)씨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기탁한 문화재는 고문서 2백여점, 고서 1백50여 책, 초상화 4점이다. 서계를 중심으로 아버지와 아들, 손자에 이르는 직계 4대의 유품이 망라됐다.

▶내용=고문서 중 문화재적 가치가 가장 뛰어난 것은 서계의 부친 박정(朴炡.1596~1623)의 교서(敎書)와 서계의 홍패(紅牌).시권(試券)이다.

'구충찬모정사공신(舊忠贊謨靖社功臣)' 으로 시작하는 박정의 교서는 비단에 한지로 배접(背接)돼 있으며, 원래 1625년(인조3년)에 작성됐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돼 1681년(숙종7년)에 왕의 전교(傳敎)에 따라 다시 만들어 배포한 것이다.

이런 연유가 박정의 손자이자 서계의 아들인 박태유의 글씨로 추기(追記)돼 있다. 박태유는 당시 안진경체 최고의 명필로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2대에 걸쳐 문과에 장원급제한 인물. 인종반정 공신교서로는 처음 나온 것으로 당대 서체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다.

문과 장원급제자의 홍패교지와 시권이 함께 발굴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홍패는 붉게 물들인 한지에 쓴 합격증으로 '생원박세당문과갑과제일인급제출신자(生員朴世堂文科甲科第一人及第出身者)' 라고 적었다.

시권은 이때 작성한 '과거 답안지' 로 우측에서부터 수험번호 및 인적사항, 시험문제(試題), 시제에 답한 표문(表文) 순이 적혀 있다. 또한 오탈자의 수정과 수험관의 검열 표시(枝同) 등도 생생히 담겨있어 교육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할 만하다.

이밖에 조선 중.후기 회화사를 가늠하는 박세당과 박정의 초상화를 비롯해 서계의 손자 박필기가 쓴 성인용 훈학서인 '훈학집요(訓學輯要)' 서계가 암행어사로 황해도 지방을 돌며 적은 '해서수행일기(海西行日記)' 등 잡록과 친필시문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도 많이 나왔다. 당시 한림(翰林)에 재직하던 박태유의 '시정기(時政記)' 는 실록편찬의 기초자료였다는 점에서 역시 희귀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발굴의 의의=정문연은 그 의미를 크게 두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6.25 전쟁으로 거의 소실된 경기도 북부지방의 문화유산 중 지금까지 나온 유일한 고문서라는 점이다.

안승준 전문위원은 "6.25때 경기 북부지역은 국군의 소이탄 투하로 가옥 등이 전파하면서 귀중한 문화유산도 전부 소실돼 유물 발굴에 어려움이 많았다" 며 "이 때문에 서계종택 고문서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고문서는 '기증성 기탁' 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귀감이 되고 있다. 박찬호씨는 지난해 말 정문연 국학팀을 찾아와 가족과 가문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물은 만대에 전할 역사적 자료" 라며 기탁의사를 표시했는데, 정문연은 박씨의 소유권을 그대로 인정해주면서 관리만 국가가 맡는 '기증성 기탁' 의 묘책을 찾아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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