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대째 가업 잇는 천안 ‘삼대기름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천안시 사직동 작은 재빼기에서 3대째 기름집을 운영하고 있는 현원곤(오른쪽)전유산씨 부부. 참기름 향 만큼 고소한 삶을 사는 이들 부부가 갓 짠 기름을 정성스럽게 담고 있다. [조영회 기자]

“수 십 년째 찾아오시는 단골손님… 가족이나 다름없죠.”

천안시 사직동 ‘작은 재빼기’에서 3대째 기름집을 이어오고 있는 현원곤(58) 사장이 웃으며 말한다.

현씨는 3대에 걸쳐 70년 넘게 이어온 가업을 부인 전유산(55)씨와 함께 지켜가고 있다. 현씨의 할아버지(故 현재성)와 아버지(故 현석민), 자신까지 3대에 걸쳐 기름집의 명맥을 잇고 있다. 아들 상훈(33)씨까지 가세하니 4대째가 된다.(교직에 있는 상훈씨는 인터넷을 통해 가업을 돕는다) 현씨가 이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40여 년, 3대의 역사 중 절반을 넘어가고 있다.

“할아버지는 디딜방아로, 아버지는 발동기가 달린 기름틀로 기름을 짜 왔어요. 저는 편하게 자동화된 기계를 쓰고 있네요” 기름틀의 역사를 말하던 현씨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버지께 죄송한 듯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세월이 흐르고 기계는 변했지만 정성을 담아 한결 같이 고소한 기름을 만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단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손때 묻은 기계를 처분할 때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기름이 정제되고 있는 과정. [조영회 기자]

3형제 중 장남인 현씨는 대단한 기업을 물려받은 건 아니지만 집안의 가업을 잇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자신의 자그마한 흔적을 남기고 싶어 상호만 바꿨다. 개성에서 기름집을 하던 현씨의 할아버지는 천안으로 내려와 ‘개성기름집’이란 이름으로 가게를 시작했고, 아버지는 천안에 정착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천안기름집’이란 이름을 붙였다. 현씨는 3대째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삼대 기름집’이란 상호를 사용하고 있다.

짧지 않은 세월, 이 집안의 역사는 그냥 이어지지 않았다. 현씨 가문의 고집스러우면서도 부드러운 성품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에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주위에선 싼 중국산을 팔아보라고 권유도 해 보지만 현씨 부부에겐 ‘소 귀에 경읽기’다. “참깨 들깨는 모두 지역 농협에서 공급받고 있고, 호두 기름의 원료도 천안 광덕산(産)만 고집한다”고 했다.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원료 구입 영수증을 꼬박꼬박 보관하기도 한다. 보다 나은 기름을 제공하겠다는 고집스런 마음이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현씨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때도 그랬듯, 현씨의 기름집은 가게라기 보단 ‘사랑방’이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기름을 짜러 온 손님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고소한 참기름 향기 속에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고객들 역시 대부분 2대는 기본, 3대째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 계속해서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건 현씨 집안의 넉넉함 때문이기도 하다. 현씨의 가게를 찾았던 날, 일부러 한산한 시간을 골랐지만 이내 손님이 들이닥쳤다.

천안 성정동에서 10여 년째 이곳을 찾는다는 강항례(48·여)씨는 “삼대기름집의 기름은 고소한 맛과 향, 인심이 최고”라며 “집 주위에도 방앗간이 있지만 굳이 이곳으로 오게 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기름을 짜는 날 이웃의 손을 잡고 이곳을 함께 찾았다. 이런 입소문으로 현씨의 기름집은 항상 북적거린다.

수 년 전부터는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 못해 기계도 최신식으로 들여놨다. 이전에는 기름 한말 짜는데 2시간씩 걸리던 것이 이제 3분이면 끝난다. 볶는 시간도 5~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루에 10가마 넘게 기름을 짜는 날이 적지 않다.

고소한 기름 향기만큼 현씨 부부의 집에서는 사람 사는 달콤한 향기도 풍긴다. “3월 25일이 며느리의 생일”이라는 현씨 부부는 혹시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게 달력에 꼭 표시를 해둔다. 2년 전 태어난 현씨의 손자 솔민(3)이의 재롱도 갓 나온 참기름만큼이나 집안을 고소하게 해준다.

글=김정규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