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松茂柏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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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호사토비(狐死兎悲)’란 말이 있다. 여우가 죽으니 토끼가 슬퍼한다는 얘기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토끼로선 저를 잡아먹는 여우가 죽으면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닐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토끼가 한 치 앞을 더 내다볼 경우엔 말이다. ‘호사토비’엔 여우나 토끼든 어차피 사람의 사냥감이 되기는 매한가지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동류(同類)의 불행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이 묻어난다. 자신을 ‘괴롭히는’ 직장 상사가 ‘짤렸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다음은 자기 차례일 테니까.

‘호사토비’에 비해 ‘삼 밭의 쑥’이란 뜻의 ‘마중지봉(麻中之蓬)’에선 보다 밝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쑥은 보통 곧게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똑바로 자라는 삼과 함께 크다 보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고 한다. 더불어 사는 이의 중요성을 말할 때 언급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얼마 전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한·중 관계를 ‘송무백열(松茂柏悅)’에 비유했다.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옆에 선 잣나무(또는 측백나무)가 기뻐하듯 한·중이 서로 잘 되기를 기원하자는 취지다. ‘송무백열’은 서한(西漢) 시기 문인 육기(陸機)가 쓴 ‘탄서부(嘆逝賦)’에서 유래한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지초가 불에 타면 혜초가 탄식하네(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嘆).’ 벗의 행복과 불행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데서 ‘송무백열’과 ‘지분혜탄(芝焚蕙嘆)’의 성어가 나왔다.

최근 한·중 관계는 ‘송무백열’이란 비유가 부럽지 않은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류우익 대사가 중국으로 나가자 중국은 역대 주한대사 중에선 가장 직급이 높다는 장신썬(張鑫森)을 대사로 내정했다. 지난해 말 류 대사가 한국을 찾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을 수행하자 장신썬은 최근 방중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수행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앞으로 한·중 관계엔 여러 변수(變數)가 있겠지만, 변하지 않고 상수(常數)로 작용할 한 가지 사실은 양국의 산과 물이 서로 닿아 있고(山水相連) 또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隔海相望) 이웃이란 점이다. 그런 이웃과 지내기엔 ‘여린위선 이린위반(與隣爲善 以隣爲伴·이웃과 선하게 지내고 이웃과 동반자로 지내다)’의 태도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 같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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