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습니다] 박형수기자의 상문고 영어 토론 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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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상문고 영어 디베이트반에 참가한 학생들이 ‘한국인의 카지노 출입 전면 허용’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이유연군(사진 오른쪽)의 견해에 박재찬군이 반박하는 모습. [최명헌 기자]

“We have the freedom to do everything, if it does not harm others. Casinos will not harm others, so we should allow Koreans to go to casinos.”(구현석·서울 상문고 2)

“Gambling in casinos can not be a freedom because of the fact that is harming family members and also society.”(안지상·서울 상문고 2)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상문고등학교 영어과 전용교실. 학생 10명이 모여 ‘한국인의 카지노 출입 전면 허용(Allow Koreans to Enter All Casinos in Korea)’을 주제로 영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의 토론 방식은 ‘영국 의회’에서 따왔다. 하나의 안건이 주어지면 이를 제안한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역할을 나눠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큰 틀이다. 토론 안건과 참여 학생 각자의 역할은 담당 교사가 정해 토론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알려준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주상하(2년)군은 “자신의 실제 의사와는 관계 없이 주어진 역할에 따라 발언 내용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된다”며 “시사 상식이 풍부할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신문을 꾸준히 읽고 있다”고 말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수업

한 학생당 발언 시간은 7분 이내다. 그러나 상대편의 발언 도중 예리하게 반박 주장을 펴는 등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카지노 업체를 국유화하는 등 적절한 대책을 마련한다면 위험 부담은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과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다 돈을 잃게 되면 가정 파탄이 야기되고, 이는 결국 사회 문제로 이어진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들 중 외국 유학 경험이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국내파였지만 실력 차이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박재찬(2년)군은 “1학년 때 처음 영어토론반에 들어와서는 발언 시간을 채 1분도 채우지 못했다”며 “배경 지식부터 갖춰야겠다는 생각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실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학부모 박영숙(45·서울 방배동)씨는 “토론 수업을 통해 아이가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수확”이라며 “우리말로도 논리적인 의사 표현을 잘 못하던 아이가 이제는 영어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걸 즐긴다”고 말했다.

자기주도적인 학습 태도로 바뀌어

토론 수업은 한번 시작하면 쉬는 시간도 없이 3시간 동안 계속된다. 정확한 규칙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교사의 개입이 없어도 학생들끼리 순서에 따라 발언과 반박을 이어간다. 수업 진행 중 한국어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학생과 잡담을 하는 등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모습도 없었다. 상대가 언제 어떤 반론을 쏟아낼지 몰라 긴장을 늦추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유연(2년)군은 “토론 시간에는 친구들이 쏟아내는 모든 말이 흥미진진하다”며 웃었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아요. 듣다 보면 공부도 되지만 일단 재미가 있어서 좋아요.”

이 학교가 영어 토론 수업을 시작한 것은 2008년 9월부터다. 김종복(영어) 교사는 “학생들은 원래 암기와 문제 풀이식 수업보다 깊이 생각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선호한다”며 “학생들의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해 방과후 수업으로 진행했는데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토론을 하다 보면 학습에 대한 자극을 받기 때문에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영어에 흥미를 느끼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오현택(2년)군은 “영어 토론은 영어 실력만 있다고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토론 주제가 과학이나 윤리 등 여러 과목의 지식을 총동원해야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과목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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