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김정남' 언론플레이] 공개는 하되 확인은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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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일본 정부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金正男.30)의 불법입국 적발 사건을 처리하면서 절묘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최대의 실익을 얻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언론플레이는 3일 오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 때는 적발(1일) 이후 조사가 끝나 김정남이란 사실이 확인된 뒤였다.

니혼TV가 처음 이 사건을 보도한 것은 이날 오후 5시30분이었다.

이같이 굵직한 사건의 경우 통상 첫 보도가 나가더라도 정부가 계속 숨기려 한다면 구체적인 사실들이 상세하게 밝혀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김정남 사건' 은 달랐다. 니혼TV 보도 후 곧바로 지지(時事).교도(共同)통신 등 다른 언론들이 적발 당시부터 진행 상황을 릴레이 중계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흘리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풍겼다.

첫 보도 후 불과 2시간30분 뒤에는 "그가 김정남이라고 시인했다" 는 교도통신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잇따라 일본 언론들이 외무성.공안당국 고위 관계자의 비공식 코멘트를 인용해 "문제의 남자가 김정남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 밝혔다.

언론플레이의 백미(白眉)는 4일 오전 김정남의 출국 장면이다. 김정남은 일본 정부의 '친절한' 공개 아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출국했다.

김정남과 그의 일행 세명은 항공기에 오르기 전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그들의 얼굴은 방송.신문을 통해 전세계에 공개됐다. 일반인들은 이 과정을 통해 그가 김정남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김정남' 이라고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문이 없어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외상은 5일에도 "경찰청.외무성.법무성이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일반인과 같이 강제출국시켰다" 고 말했다. 그러나 다나카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이 끝까지 김정남의 신원을 공식 확인해 주지 않음으로써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 이번에 '선심' 을 썼다는 사실을 북한에 상기시켜 앞으로의 수교협상.납북 일본인 문제 등에서 유리한 카드를 쥐게 됐다" 고 풀이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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