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김정남 밀입국' 미리 알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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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4월 말부터 시작된 황금 연휴기간을 맞아 조용하던 일본 열도가 3일 저녁 터져나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 추정 인물의 체포사건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방송들은 이 소식을 모두 톱뉴스로 처리했고, 신문들도 인터넷 사이트에 일제히 머리기사로 올렸다.

특히 방송들은 김정남이 어릴 때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가족과 함께 찍은 한국의 여성중앙 보도 사진까지 곁들여가며 치열한 보도경쟁을 벌였다.

○…일본의 김정남 체포에는 미국 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CIA로부터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입국할 것이란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일본 공안당국이 나리타(成田)공항에서 김정남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이 소식통은 "김정남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CIA가 얼굴사진.지문을 모두 갖고 있어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고 밝혔다.

지지(時事)통신은 탈북자 지원단체인 RENK(북한의 민중.긴급행동 네트워크)의 이영화(李英和)대표를 인용, "김정남의 후계자 내정 정보를 입수한 CIA가 일본 공안당국과 손잡고 작전을 편 것" 이라고 전했다.

○…3일 도쿄(東京)시내 호텔에 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가와시마 유타카(川島裕)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으로부터 긴급 보고를 받은 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일반 불법여권 소지자와 같이 취급해 국외 추방키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1일 오후 붙잡힌 후 3일 저녁까지만 해도 한국인이라며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일본 공안당국이 사진 등을 제시하며 추궁하자 끝내 "나는 김정남" 이라고 시인했다. 이에 앞서 그는 "관광차 왔다.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다" 고 진술했다. 그는 T셔츠차림의 관광객 모습이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일본 경찰.공안당국 내부에서는 일본 정부가 김정남을 추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상당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일본 경찰.공안당국은 당초 김정남의 입국을 알았지만 입국관리국이 경찰에 고발하지 않아 체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테러국인 북한의 중요인물이 법을 어겼는데 그냥 추방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 말했다.

한편 일본의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하는 전국협의회' 측도 "김정남은 납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라며 "그냥 추방하면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 라고 주장했다.

○…일본 외교가는 3일 '김정남 사건' 이 전해지자 사실을 확인하느라 난리를 피웠다. 주일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친분있는 일본 내 정보소식통 상당수가 휴가를 떠나 자리에 없자 속을 태우는 모습이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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