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오늘은 지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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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제12보(130~140)=전보에서 허영호 7단이 중앙을 둔 것이 기울어가는 흑의 왕국에 결정타를 가하고 말았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고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지금처럼 한 집이 새로운 판에 집도 절도 아닌 중앙에 귀중한 한 수를 소모한 이유는 무얼까. 당연히 선수라고 생각한 탓이다. 하지만 추쥔 8단은 우상 성공의 기세를 타고 눈이 더욱 밝아졌다. 132에 이어 134를 선수하는 것으로 자신의 약점을 깨끗하게 보강했다.(134에 135의 응수는 필연이다. 손 빼면 ‘참고도1’처럼 귀가 도로 살아가 버린다.)

추쥔은 여기서 유유히 손을 돌려 반상 최대의 136을 차지했다. 크기만 따진다면 136보다 A가 더 클지 모른다. 하지만 136은 두텁고 이 수로 모든 후환이 사라졌다. “끝났습니다”하는 선언이었다.

허영호 7단은 한 발 늦게 그 사실을 알고 숨이 탁 막혔다. 137, 139로 나간 뒤 더 이상 손이 나가지 못한다. 예정대로라면 ‘참고도2’ 흑1 다음 3으로 끊어야 한다. 한데 금방 될 것 같은 이 절단이 수순과 같이 교묘하게 안 되는 것 아닌가. 비극이다. 밀리는 형세에서 또다시 헛방을 날리고 말았으니 맥이 풀린다. 이런 날은 지는 날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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