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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골·진골' 편법투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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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무총리.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집권 민주당이 이탈표 방지를 위한 기막힌 편법을 선보였다. 'DJP+α' 의 과반수로도 안심이 안돼 믿을 수 있는 소수 의원만 투표에 참여시키고 대다수는 집단 기권토록 함으로써 가결을 막았다.

당장의 해임공세 차단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좀스럽고 구차한 모양새에 정치 혐오만 깊어질 뿐이다.

민주당은 기권도 정당한 의사표시라고 자기합리화에 열심이다. 국회법에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규정이 없으니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인사 관련 안건 등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표결토록 규정한 국회법의 정신은 의원 개인의 양심과 소신이 당론이나 인간관계 등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자는 데 있다.

이번 집단 기권은 지도부의 각본에 따른 행동이자 의원 각자의 의사가 공개된 것이니 법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완벽한 법과 제도란 찾기 어렵다. 그 정신과 취지를 최대한 살려 가는 방향으로 운영할 때 비로소 권위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편법 동원은 날치기와 다를 바 없는 국회법 훼손 행위다.

민주당으로서는 지도부가 소속 의원조차 믿지 못한다는 내부 고민을 노출한 셈이니 그 부작용도 작지 않을 듯싶다. '믿을 수 없는' 인물로 분류된 의원들로서는 내심 반발이 뒤따르지 않겠는가. 이미 민주당 내에선 '성골.진골' 이라는 비아냥이 나돌고 있다.

당의 결속을 확신하지 못해 분리 투표와 기권이라는 해괴한 편법을 동원해 놓고 합법성까지 강변하니 집권 정당의 모습이 누추하다. 과반수 의석을 채우기 위해 의원 임대까지 불사했던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이 모든 구차한 그림은 힘의 정치 논리에서부터 비롯됐다고 본다. 임계 과반수인 1백37석의 'DJP+α 정치' 를 고집하는 한 정치는 피곤하게 굴러갈 수밖에 없다. 한명만 빠져도 일이 틀어지니 중병을 앓고 있는 의원까지 끌어내야 하는 기막힌 정치가 불가피하다. 그 뒤끝은 항상 반목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정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집권 여당도 표 대결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항상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때 서로가 이길 수 있는 상생정치가 싹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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