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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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호 15면

사람끼리 다툴 때 서로 기억하는 내용이 달라 난감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지만 한쪽이 거짓말을 할 때도 많다. 우선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실제로 죄의식 없이 거짓말을 잘 한다. 끝까지 자신의 범죄사실을 부인할 경우엔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거나, 범죄 사실과 유사한 비디오를 보여준 다음 반응을 관찰하는 방법이 있다(소아성애자들은 아동 포르노를 보면서 발기가 되지만 정상인은 혐오 반응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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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거나 취조를 당할 때 적당히 대답하고 들쭉날쭉한 건망증을 보이며 두통 등의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간서 증후군(Ganser syndrome)’이라 부른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고, 명백한 이득을 얻기 위해 신체 혹은 정신증상을 거짓으로 일으키는 것은 꾀병(Malingering)이다. ‘문하우젠(Munhausen) 증후군’이라고도 하는 가장성장애(Facticious disorder)는 뚜렷한 현실적인 이득이 없는데도 신체 증상이나 정신 증상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스트레스 요인이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선택적인 기억상실을 보이는 해리성 기억상실(Hysterical amnesia)도 있다.

뇌 손상이 있는 기질적 기억상실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술을 마셨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도 둘러대는 경우가 있다. 필름이 끊길 정도(Black out)로 몹시 취했다면 발기도 되지 않을 뿐더러 집중력과 조직적 행동이 요구되는 강간이나 살해와 시체 유기 등 복잡한 일련의 행위들을 해낼 수 없다.

꼭 범죄자나 정신질환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일상생활에서 기억하는 것이 서로 맞지 않아 곤혹스러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부·부모 자식·형제·친구들이 지난 일을 서로 다르게 기억해 의심을 하고 의가 상하는데, 우리의 기억이 복잡한 모습으로 입력되어 있기에 생기는 드라마다.

우선 외부의 사건들은 정신의 여과장치를 지나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뇌세포에 저장된다. 말이나 행동은 대본이나 영화 필름처럼 있는 그대로 입력되지 않고 대략의 골조로 기억한다. 따라서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감정이 실리지 않는 사건은 아예 등록(Register)조차 되지 않는다. 휴대전화·열쇠·지갑 등을 어디에 놓았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다.

공적인 관계에서도 기억의 왜곡이 문제를 일으킨다. 앞뒤 자르고, 전혀 다른 의미로 편집해서 보도한다며 펄펄 뛰는 사람이 많다. 또 그렇게 말 해 놓고 왜 뻔한 거짓말 하느냐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정신의학자의 입장에선 그들의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련된 취조의 기술, 숙련된 정신과 의사의 상담기법, 재판정의 명판결, 엄정한 윤리의식이 더욱 요구된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리 훈련받고 공부를 해도, 작심하고 거짓말하는 머리도 좋고 돈과 권력이 막강한 이들에게 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DNA 증거나 폐쇄회로TV 혹은 비디오 등 증거가 있는데도 거짓말을 하는 이들의 강심장이 사회 전체를 전율시키기도 한다. 융 심리학자들은 우리 마음에는 선하고 정직한 측면도 있지만 일관성 없이 악하고 거짓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죄의식 없이 거짓말을 하는 이들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악한 심성을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행동화한다. 우리들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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