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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5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58. 외환업무 일원화

당시엔 외자도입이라고 해 봤자 상업차관격인 연불수입 일색이었다. 연불수입은 초기엔 정부의 지급보증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종의 외상 수입이었다.

직접 투자의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결국은 직접 투자를 받아들이는 길밖엔 없었다.

외국인의 직접 투자 및 증권시장 진출이 본격적인 외자 도입이라면 은행 차관은 국제금융 시장에서 중단기자금을 들여오는 것이다. 그런데 외자 도입 업무는 경제기획원이, 중단기자금 도입은 재무부가 맡고 있는 셈이었다.

이미 넘어온 외자도입 업무를 기획원이 자진해서 넘겨줄 리는 만무했다.

나는 김재익(金在益)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통합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원 출신의 김수석도 내 의견에 찬성했다. 그렇다고 외자도입 업무를 재무부로 넘겨 달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 후 뜻밖에도 외자도입 업무가 선선히 재무부로 넘어왔다. 결과적으로 두 부처간에 합리적으로 업무가 조정된 셈이다.

당시 관가에선 내가 외자도입 업무를 빼앗아 왔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전말은 이러했다.

업무가 조정되며 경제협력국도 재무부로 넘어왔다. 사람도 일부 따라왔다. 그 바람에 외환.외자 관련 담당국이 국제금융국까지 두 개가 됐다.

당시 기획원은 예산권과 외자도입 업무를 수단으로 해 경제계획 5개년 계획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재무부와 업무영역이 중복됐던 것이다.

기획원은 사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기구다. 일본의 경제기획청만 하더라도 경제 계획만 담당할 뿐 예산권이 없다. 경제기획청 장관은 힘이 없을 뿐더러 부총리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재무장관이 맡고 있다.

돌이켜보면 경제기획원은 경제개발 초기에 계획경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였다. 시장경제가 완숙하고 정부의 규제가 충분히 완화되고 나면 발전적으로 해체되는 것이 옳았다.

재무부와 기획원을 통합한 재정경제원의 출범은 그런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했다. 문제는 경제의 자율화.개방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개 부처에 통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업무와 책임을 과도하게 집중시키는 한편 성급하게 조정기능을 없앤 것이었다.

정부 조직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조정 불능 상태에서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맞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역시 준비 안 된 이상론이 빚은 결과라고 나는 본다.

경제부총리제는 당분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조조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독립한 조정역을 누군가는 떠맡아야 한다.

1989년 시장평균환율제를 기안한 이용성(李勇成) 전 은행감독원장과 홍재형(洪在馨) 전 부총리(현 민주당 의원), 주병국(朱炳國) 전 재무차관, 그리고 나 네 사람은 당시 국제금융 정책을 세우고 집행한 4인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용성씨는 앞서 밝힌 대로 수출을 늘리기 위해 변동환율제 환율공식의 P(실세 반영을 위한 가중치)를 최대한 활용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엔 환율이 그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고 말았다. 내가 단기자금을 차입한 것이나 그가 환율을 활용한 것을 생각하면 프랑스의 작곡가 뒤카의 관현악곡 '마법사의 제자' 가 떠오른다.

빗자루로 하여금 물을 길어오게 하는 주문을 어깨 너머로 배운 마법사의 제자가 그걸 그치는 주문도 모르는 채 재주를 피우다가 홍수가 난 격이랄까?

정인용 前경제부총리

정리=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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