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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지자체에 정당공천제 없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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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러나 정당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2005년에는 시민사회의 비판에 계면쩍은 표정으로 자리를 피하기만 하던 정당들이 2009년에는 자신들의 입장을 강변하며 나서기까지 했다. 결국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정당공천제를 변함없이 유지하기로 했고 경향 각지에서 전개됐던 정당공천제 폐지 운동은 좌절하고 말았다. 정당공천제 폐지 운동이 제기했던 문제는 걱정거리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운데 지방선거는 다가오고 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정당 공천 과정에서 생기는 비리 문제다. 돈을 받거나 정실에 얽매여 좋은 후보를 공천하지 않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각 정당은 이에 대한 따가운 눈총 때문에 배심원제라는 시민감시를 자청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공천을 하는 사람이 배심원을 임명하는 제도라면 시민감시는 공염불이 아니냐는 비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선거를 치를 경우 지역주의의 소용돌이가 동네 밑바닥까지 훑게 될 것이라는 점도 걱정거리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각 정당은 어김없이 대선 전초전이라는 구도로 유권자들을 몰아갈 것이다. 그리고 각 정당이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지역에서 배타적 지지를 얻기 위해 지역주의를 선동할 것이다.

정당이 위로부터 풀뿌리 정치를 동원하는 선거 결과가 지방자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지금까지 우리가 충분히 봐왔다. 영남 지역은 한나라당이, 호남 지역은 민주당이 지방권력을 독점적으로 차지할 게 뻔하다. 각 지방의 권력구조는 다양성을 잃을 것이다. 각급 의회는 하나의 정당에 의해 지배될 것이고, 같은 정당에 속한 의회와 단체장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민주적 원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정당공천제 폐지 운동에 나섰던 시민들이 다시 한번 소매를 걷어붙이고 좋은 후보를 찾고, 지방선거가 권력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지방의 견제세력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란 민초가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정당의 권력정치로부터 시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정치를 지키는 ‘시민정치’ 시대를 열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난해 서울에서 출범한 ‘희망과 대안’이라든지 올 들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풀뿌리대구연대’ 등 각 지역의 시민정치 조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행정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