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지스함 대만 판매 유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워싱턴.베이징=김진.유상철 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만에 첨단 이지스급 미사일시스템 판매 요청을 거부했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이 24일 보도했다.

대신 미국은 이지스급보다 한단계 낮은 키드급 구축함 4척과 최대 8척의 디젤 잠수함, 12대의 P-3C 대잠수함 초계기, 자주포를 대만에 판매하고 패트리어트 요격시스템인 PAC-3 관련 기술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졌던 첨예한 갈등은 일단 최악의 국면은 피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대만에 이지스 레이더 시스템을 판매하면 중대한 결과를 빚게 될 것" 이라고 경고해 왔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번 결정은 판매 연기라는 단서를 달아 상황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추가 제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측면에서 대만과 미국이 꼭 중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의 한 관리는 23일 부시 대통령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안보상황과 중국의 대만 공습위협을 고려, 이지스급 구축함을 제공할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또 대만이 이지스급 구축함보다 떨어지지만 현재 전력증강에 확실한 도움이 될 키드급 구축함 4척을 오는 2003년께 보유할 수 있게 돼 일러야 2010년께나 취역이 가능했던 이지스함 구매계약보다 현실적인 이득을 얻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의회 내 공화당 강경파를 중심으로 대만에 대한 첨단무기 판매를 주장해 왔으나 클린턴은 중국을 자극할까봐 판매를 꺼렸다.

또 최근 중국이 미 정찰기 승무원 24명을 11일 동안 억류하자 미국 내 강경파는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더욱 강력히 주장했다. 상.하원 의원 1백2명은 판매를 촉구하는 서한을 부시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부시는 이같은 강경파의 주장을 물리치고 현실주의를 택했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를 긴장으로 몰고가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라는 점을 인식한 결정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은 국방부의 권고를 백악관이 받아들인 형식으로 이뤄졌지만 백악관이나 국방부에 여전히 대중 강경파들이 포진해 있어 미.중 관계가 다시 긴장으로 치달을 개연성이 크다.

중국 정부는 이날 미국이 대만에 ▶키드급 구축함▶디젤 잠수함▶대잠 P-3초계기를 판매키로 한 결정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장치웨(章啓月)대변인은 "미국의 무기판매 방안은 중.미 양국간 3개 공동성명을 위반한 것" 이라고 비난하고 "단호한 반대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은 중국이 미국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와 정치.군사분야 협력을 강화할 것이며 그 일환으로 탕자쉬안(唐家璇)중국 외교부장이 오는 29일부터 이틀간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