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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시위대 피 뿌리며 ‘혈액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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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를 지지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16일 방콕 정부청사 정문에 시위 참가자들의 피를 뿌리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피 10cc씩을 뽑았다. 이날 시위는 친 탁신 단체인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 회원들의 주도로 벌어졌다. [방콕 로이터=뉴시스]

일촉즉발의 반정부 시위가 닷새째에 접어든 태국 방콕에서 전례 없는 ‘유혈 시위’가 등장했다.

16일 오후 4시30분쯤(현지시간) 총리실이 위치한 고풍스러운 정부 청사 앞 연녹색 잔디밭이 푸르게 빛났다. 시위대 본진이 있는 랏차담넌 거리에서 약 3㎞ 떨어진 이곳에 아피싯 웨차치와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붉은 셔츠’ 시위대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청사 앞 4차선 도로는 적색 물결로 넘실댔다. 친탁신 단체인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 등 시위대가 피가 가득한 1L짜리 페트병들을 정부 청사에 던지기 위해 온 것이다. 시위 참가자들로부터 10㏄씩 뽑아 모은 피였다. 청사 정문에는 이들을 막기 위해 진압 경찰 100여 명이 저지선을 만들었다. 하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양측 합의로 시위대 대표 50명이 청사 정문과 측면 보조문에 페트병 7개 분량의 피를 뿌렸다. 시위대 수만 명은 “너뻣처(붉은 셔츠)” “탁신 깝마(돌아와요, 탁신), 아피싯 옥빠이(아피싯 물러나라)”를 연호했다. 시위대 지도자 중 한 명인 나타웃 사이쿠아는 “아피싯 총리의 피는 차다. 그러나 우리의 피는 뜨겁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시위대 관계자는 “이 행사는 폭력 시위에 대한 여론의 질타와 거부감을 피하면서 너뻣처의 분노와 저항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시위대는 아피싯 정부의 퇴진과 의회 해산을 관철시키기 위해 10만 명의 참가자들로부터 10cc씩의 피를 받아 ‘100만cc 피 뿌리기’ 행사를 펼칠 계획이었다. 대중 동원이 여의치 않자 기상천외한 혈액 시위까지 동원한 것이다.

시위대 측은 시위 과정에서 중대한 시점이라고 판단되면 그때마다 ‘100만㏄ 피 뿌리기’로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UDD는 정부 청사에 이어 집권 여당인 민주당 당사와 아피싯 총리의 자택 주변에도 피를 뿌리겠다고 경고했다.

정치권 내 친탁신과 반탁신 세력 간 공방도 뜨거웠다. 수텝 타웅수반 안보담당 부총리는 이날 “미국을 포함한 태국의 우방 외교 관계자들이 최근 탁신 측과 접촉한 결과 폭력 사태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피싯 총리는 이날도 무력 불사용 원칙을 재확인했다. 법 테두리 안에서 질서를 지킨다면 시위대의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시위대도 태국 국민이다. 국민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친탁신계 UDD 지도자 자투폰 프롬판 하원의원은 “의회 해산을 이끌어내기 위해 친탁신 푸에타이당 소속 의원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콕=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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