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은, 중앙은행으로서 권위 세우는 데 주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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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된 김중수(63)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는 17일 프랑스 파리의 대사 집무실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중앙은행으로서의 권위를 세우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한은의 독립성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총재 인선에는 세 가지 조건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화 마인드, 정부 및 시장과의 소통 능력, 개혁 의지가 그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그중에서도 첫째 요건이 상대적으로 중시된 셈이다. 올해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는 해이므로 국제감각과 영어 구사력이 큰 변수가 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정부에 얼마나 협조적인지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됐다. 김 대사는 국책연구기관장, 청와대 경제수석과 같은 요직을 거치면서 정책 조율 능력을 쌓았다. 그는 지난 12일 “한은도 정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만만찮다.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통해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장민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한은 총재는 정부나 정치권의 외풍을 막아내면서 중앙은행의 목표인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정책을 한결같이 펼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의 경력을 볼 때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한은 관계자는 “중앙은행 총재는 정부의 외압에 굴복하지 않아야 하는데 김 내정자가 이런 강단을 갖추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권위를 높이겠다는 김 대사의 발언도 이를 의식한 것이다.

적절한 출구전략 타이밍을 찾는 일도 그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김 내정자가 어떤 인식을 지녔는지 한은 내부는 물론 시장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서둘러서도 안 되겠지만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차일피일 미뤄도 안 된다. 정확한 타이밍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한은 총재로 김 대사가 내정되면서 기준금리 인상이 늦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신임 총재가 무리하게 경제 상황에 역행해 기준금리를 조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대사와의 일문일답.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서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을 때 견제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한은의 독립성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것이지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기도 하지만 국가 운영의 총책임자다. 흔히 대통령은 성장을 중시하고 한은 총재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에 대립관계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어떤 대통령도 물가 안정을 희생하는 성장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은의 독립성을 높이겠다는 의미인가.

“법과 제도로 정해진 원칙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 곧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다. 대통령도 한은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금리 문제를 어떻게 할 계획인가.

“출구전략은 재정·통화·금리에 대한 ‘정책의 조합’으로 접근해야 한다. 각 나라마다 이 셋 중에서 시급한 것이 다를 수 있다. 금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입장이 아니다.”

-경제수석비서관 시절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사태를 겪었다. 그 경험이 총재직 수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국민들의 믿음이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닐지라도 ‘사실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정보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도 절감했다.”

  김종윤 기자, 파리=이상언 특파원


김중수 한은 총재 내정자의 최근 말말말

3월 12일 KBS 제1라디오와 인터뷰

“ 한국은행도 정부다. 한국은행이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은 것은 적절치 않다.”

“ 한국은 인플레에 대한 압력이 그렇게 강한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출구전략 관련)

1월 OECD 대표부 직원에게 보낸 편지

“ 공공부문이 민간부문에 져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형국이다.”

“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국제경쟁은 외면하고 기득권화하는데, 이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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