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푸틴 교묘한 언론 손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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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러시아가 요즘 언론자유 문제로 시끄럽다. 러시아 최초.최대의 민간상업방송인 미디어 모스트그룹 소속 NTV 방송이 소유권 분쟁 끝에 사실상 독립언론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3일 임시주주총회 결과 구 경영진이 몰려난 이후 '항의' 라는 글자를 띄워놓고 방송을 진행하던 NTV 소속기자들은 14일 새 경영진의 방송국 장악에 따라 사실상 방송국에서 쫓겨났다.

◇ 사건의 배경=이번 NTV사태는 푸틴 정부 출범후 공식.비공식 형태로 표명, 추진돼 온 러시아 특유의 올리가키(과두재벌)청산작업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푸틴은 집권후 언론계를 장악하고 있는 언론계 올리가키 청산작업을 진행해왔다.

이에 따라 유대계 언론재벌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블라디미르 구신스키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첸트르 TV의 실질 소유자인 유리 루즈코프 현 모스크바 시장에 대한 압력이 시작됐다.

이 결과 베레조프스키는 ORT TV에 대한 지분 포기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구신스키는 NTV를 친정부 성향의 국영기업인 가즈프롬사에 사실상 빼앗겼다. 또 탈세혐의로 러시아검찰에 고소됐다.

반면 루즈코프는 푸틴에게 정치적 항복을 선언, 정치적 타협점을 찾아 첸트르TV 방송사의 명맥만은 유지할 수 있게 됐다.

◇ 사태 전개과정=구신스키의 스페인 도주 후 NTV에서는 같은 유대인이자 구신스키의 오른팔인 사장 예브게니 키셀료프를 중심으로 한 'NTV 기자 및 프로듀서 모임' 과 정부를 대변하는 러시아 언론부간의 대리전이 치열하게 진행됐다.

키셀료프는 2000년 5월부터 불거진 사태 초기부터 구신스키 회장의 대변인역을 적극 맡아 왔다. 그는 국제유대인동맹, 러시아 기자동맹, 야당인 야블로코 및 우파연합 등 외곽조직들의 지원을 적극 활용했으나 올 들어 NTV 채무에 대한 가즈프롬사의 채권압박이 가시화되면서 경영권을 상실했다.

전문가들은 가즈프롬 강공의 배경에는 방송사 내 친(親) 구신스키 인맥을 완전히 청산하고자 하는 러 정부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정부 입장=푸틴은 언론사의 분쟁에 직접 휘말리기보다는 국영기업 가즈프롬을 전면에 내세워 외형상으로는 채권 및 채무관계를 둘러싼 전형적인 기업의 합병 및 인수로 사태 발전을 유도하고 있다.

◇ 전망=오는 5월 10일 시작될 모스크바 시법원의 판결이 중요하다. 재판부는 NTV를 둘러싼 재산권 분쟁문제를 이날부터 심의한다. 그러나 구신스키 회장이 스페인에 사실상 망명해 있고 가즈프롬측과 미디어 모스트간의 채무.채권관계가 워낙 복잡해 NTV가 다시 구신스키에게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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