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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SK대박' 누가 다 챙겨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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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SK㈜에 대한 소버린의 공격이 재개됐다. 올해 정기주총에서 이사후보 전원을 별도로 추천해 최대주주와 대결을 벌였던 2대주주 소버린이 최태원 회장의 임원자격을 박탈하는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주총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소버린의 도전으로 양쪽의 주주 모시기 싸움이 예상되자 SK㈜의 주가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들이 주식 매집에 나서면서 외국인 지분율이 61%를 넘어섰고, 주당 7000원대에 약 15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한 소버린은 1년 반 만에 1조원의 평가차익을 얻는 대박을 터뜨렸다.

SK그룹의 모태는 직물과 무역 전문의 선경(현 SK네트웍스)이다. 선경은 1980년 국내 최대 정유회사인 유공(현 SK㈜)을 인수했고, 유공은 다시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했다. 작은 고기가 더 큰 고기를 물고 있는 불안한 소유구조는 98년 최종현 회장이 타계하면서 더욱 취약해졌다.

SK그룹의 불안한 소유구조는 소액주주운동 시민단체의 집중공격 대상이 됐고, 타이거펀드가 막대한 투자이익을 챙겨 떠날 때까지 SK텔레콤은 큰 곤욕을 치렀다. 그러던 중 지난해 초 당시 SK글로벌의 거액 분식회계가 적발됐고 최태원 회장이 구속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분식회계로 인한 시장의 불신으로 SK그룹 주식의 동반 폭락사태가 발생됐고, 폭락장세 속에서 한국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선봉에 서겠다며 소버린이 헐값으로 SK㈜의 주식을 매집해 14.9% 지분을 가진 2대주주로 등극했다.

SK㈜는 안정적 이익을 얻는 국내 최대의 정유회사이면서 이동통신의 최강자 SK텔레콤의 주식 20%를 보유한 지주회사이기도 하다. SK㈜와 SK텔레콤은 주로 국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불황기에도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어 외국계 펀드의 집중투자대상이 되고 있다. 외국계 펀드들은 SK㈜의 이익으로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하기보다 현금 배당을 선호하고 있다. 또한 소버린을 비롯한 외국계 펀드는 SK텔레콤 주식을 처분해 이익을 실현시키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버린에 대항하려고 최 회장 측은 우호세력을 만들기 위해 외국계 펀드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손실도 클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 2개월 사이에 의결권 없는 SK㈜ 우선주가 152%나 급등한 내막도 의심가는 부분이다. 회사는 경영권과 상관없이 의결권 없는 우선주를 매입해 소각함으로써 우선주 가격의 폭등을 유발했는데, 이것이 외국계 펀드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면 큰 이익을 얻은 세력이 있을 것이다.

주식회사의 기본원리는 주주평등의 원칙이며 보유주식 수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해 다수의 지지를 얻은 세력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외국인 주주를 차별해서는 안 되듯이 내국인 주주도 부당하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등 국내 주주의 족쇄를 채우는 규제는 외국계 펀드에 대박의 기회를 헌납하는 우둔한 정책이 될 수 있다. SK㈜의 2대주주인 소버린이 15% 미만의 지분율로 출자총액제한을 받고 있는 대주주를 상대로 계속 경영권 탈취를 시도하는 것도 출자규제의 반사이익을 노린 것이다.

대기업들이 문어발식 확장을 펼쳐가는 고성장시대가 다시 올 수는 없다. 내년부터 집단소송제가 도입되고, 삼성자동차와 LG카드에서 보듯이 잘못 투자했다가는 주식을 직접 보유하지 않았던 그룹회장의 사재까지 빼앗기는 상황에서 승산 없는 사업에 무리하게 진출할 기업가는 없을 것이다. 최근의 투자 및 신규채용 부진이 대주주 못해 먹겠다는 기업가들의 자포자기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하여 규제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