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銀 합병 남은과제와 숨막힌 순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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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주택은행이 11일 합병 본계약 조건에 합의한 것은 금융감독위원회의 12일 청와대 업무보고를 앞두고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력에 밀린 때문으로 보인다.

9일과 10일 이틀간이나 이근영 금감위원장과 김상훈 국민,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심야협상을 벌이면서도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두 은행장이 조직 이기주의 때문에 국가적 명제인 우량은행의 자율적 합병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부와 여론의 질타가 막판에 두 은행의 양보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핵심 사안 중 하나인 합병은행장을 확정하지 못한 데다 합병에 따른 조직 융화를 어떻게 이루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어 합병은행이 순항하기 위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 합병 조건의 내용과 합병 절차〓두 은행이 가장 신경쓴 부분은 존속법인 문제였다. 존속법인의 은행장이 합병은행장으로 유력해보이기 때문이다. 당초 합추위에서는 국민은행으로 결정했으나 주택은행의 반발 때문에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또 합병은행의 이름을 국민은행으로 정한 것은 국민은행의 지명도가 높은 데다 '주택' 이라는 이름이 기업과 개인금융.국제업무 등 거의 전부분에서 국내 1위인 새 합병은행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새 법인을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거나 절차가 복잡하면 국민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하고, 통합은행 이름을 주택은행으로 하겠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앞으로 구체적인 절차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논란의 소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합병비율은 당초 예상대로 1대1. 6883으로 확정됐다. 주택은행 1주는 국민은행 1.6883주와 같은 가치라는 뜻이다. 두 은행 주식은 이 비율에 따라 신설 은행의 주식과 교환된다.

◇ 합병은행장 누가 되나〓최범수 합추위 간사는 "합병은행장을 이번에 결정할 경우 다른 조건들과 함께 협상을 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며 "합병은행의 장래를 위해서는 합병은행장이 아무런 상처와 부담이 없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합병은행장은 추후에 논의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협상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은 사실상 합병은행장을 염두에 둔 두 은행간의 힘겨루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현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김정태 주택은행장(54)이 대외적인 지명도 등 때문에 다소 앞선 듯한 상황이지만 합병 과정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출신인 김상훈 국민은행장(59)은 대주주인 골드먼 삭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합병은행의 최대주주인 정부의 입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철근.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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