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주성엔지니어링 본사에 내걸린 대형 태극기. 적자를 내기 시작하던 2001년, 직원들에게 ‘기술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불어넣으려고 내걸었다. ‘행복을 만드는 회사’(사진 왼쪽)라는 플래카드는 ‘턴어라운드(재기)’에 성공한 뒤 사람의 중요성을 절감한 황철주 사장이 “직원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겠다”며 붙인 것이다. [오종택 기자]
본지는 베를리너판 발행 1주년을 맞아 대우증권과 함께 한국의 턴어라운드 기업들을 발굴, 위기 극복의 비결을 분석했다. 정보기술(IT)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 여행사 모두투어네트워크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기업에 ‘위기 극복’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기업이 적자에 허덕이면 혹시나 제품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할까 소비자가 외면하고, 채권단도 자금을 회수하려 달려든다. 위기가 더 큰 위기를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턴어라운드 기업들은 이런 어려움을 딛고 일어섰다. 구체적인 방법은 조금씩 달랐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위기 속에서도 연구개발(R&D)에 집중해 회사를 다시 일으킬 신제품을 키워냈다. 현대미포조선은 사업을 단순화해 석유화학제품 운반선(PC선)과 중형 컨테이너선에 주력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이 분야 1위가 됐다. 모두투어는 노사의 신뢰가 위기 극복의 밑바탕이었다. 회사의 뚜렷한 ‘사후 보상’ 약속이 없었음에도 노조는 임금 삭감을 받아들였고, 회사는 되살아난 뒤 가장 먼저 직원들에게 보상을 안겼다.
대우증권 조재훈 투자전략 총괄이사는 “방법은 달라도 이들의 최고경영자(CEO)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갖췄으며, 카리스마를 지니고 조직을 이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턴어라운드 기업의 CEO들은 또 부활의 힘을 ‘사람’과 ‘믿음’에서 찾았다.
“선수(직원)들이 ‘다시 한번 세워보자’고 뜻을 모은 게 가장 큰 힘이었다. 기업의 성공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1등 기술보다 1등 인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
“고통도 기쁨도 함께 나누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말대로 직원들이 급여 삭감의 고통을 묵묵히 나누면서 더 열심히 뛴 덕에 이젠 기쁨을 나눌 수 있게 됐다.”(홍기정 모두투어네트워크 사장)
“모두가 ‘살아날 수 있다’는 신앙 같은 믿음에 빠져 악착같이 일했다. 심지어 ‘휴일이 밉다’고들 했다. 회사가 완전히 되살아나는 날짜를 늦춘다는 이유였다.”(변진석 애강리메텍 부사장)
권혁주 기자
☞‘턴어라운드’ 기업 어떻게 선정했나
세 가지 조건을 달았다. 위기를 겪었고, 이후 체질이 튼튼해졌으며,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이다. 특수 상황이었던 외환위기는 예외로 하고, 그 뒤인 1999년 이후 한때 당기순손실을 낸 기업을 우선 추렸다. 영업이익률이 1% 이하였던, 사실상 적자기업도 포함했다. 그중에서 위기를 딛고 일어선 후 지난해까지 계속 흑자를 낸 기업들을 찾았다. 흑자를 낸 게 ‘반짝’ 실적이 아니라 ‘지속가능’한지를 살핀 것이다. 다만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2008년은 파생상품 키코(KIKO)로 인한 특별 손실이 있을 수 있어 실적을 따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2010년의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증권사들이 전망한 고성장 예상 업체를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