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정치] 선거후보 기호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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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2번의 효과’.

요즘 민주당이 국민참여당(참여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며 내세우는 ‘무기’다. 특히 야권의 경기도지사 후보직을 놓고 참여당 유시민(사진)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쟁하는 민주당 김진표 의원의 발언은 더 구체적이다.

“경기도에는 도지사뿐 아니라 시장·군수·도의원·시의원이 있고, 그 후보 500여 명이 기호 2번(민주당) 깃발 아래 뛰고 있다. 기호 8번의 참여당 도지사 후보로 이들 기호 2번을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겠는가.”

민주당에선 기호 2번의 힘을 맹신하는 이들이 많다. 유권자들이 대부분 1번은 여당, 2번은 야당으로 보고 결국 1, 2번 후보 중에서 택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광역단체장 2번을 찍은 사람은 (기초단체 선거에서도) 계속 2번을 찍는다”고 말한다. 다른 야당과 후보 단일화를 논의하는 민주당 지도부도 사석에서는 “누가 5번(민노당)이나 8번을 찍겠나. 2번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당 공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에서도 기호는 중요한 변수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동안 교육감 선거 후보자들은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기호를 배정받았다. 이 때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는 1, 2번을 받은 후보가 그동안 대부분 당선됐다. 그러다보니 “호남에선 민주당 후보처럼 보이는 2번을 받기위해 강씨 성의 유령후보를 등록시켰다”거나, “앞 번호를 받기위해 유씨가 류씨로 성씨를 바꿨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국회는 지난달 법을 개정했다. 교육감 후보들의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해서 기호를 배정하는 방식 대신 투표지에 오를 후보의 순서를 추첨으로 정하기로 했다. 1번, 2번 하는 식의 아라비아 숫자도 붙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투표지 앞 순위에 이름이 오르길 희망하는 후보들의 기대까지 꺾진 못할 전망이다. 지난달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은 경기도 교육감 후보 4명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루 두 차례 실시했다. 첫 조사에서 최하위였던 4번째 후보를 재조사에서 맨 앞에 제시했더니 지지율이 15.8%포인트나 올랐다고 한다.

물론 기호 순위에 따라 득표율이 달라진다는 이런 류의 주장에 참여당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임찬규 전략기획위원장은 “‘기호 2번론’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투표는 정치적 결정이지 숫자나 기호놀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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