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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줄줄이 문 닫는 일본 백화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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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도쿄 이세탄백화점 기치조지점이 문을 닫은 14일 임직원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지지통신 제공]

14일 오후 7시 일본 도쿄 도심에서 전철로 20분 거리에 있는 기치조지(吉祥寺)역 앞 이세탄 백화점. 요시다 에이치(吉田榮一) 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오랜 세월 저희 백화점을 사랑해주신 고객 여러분과 지역민, 그리고 기치조지거리에 감사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직원들도 백화점 출입구에 나와 셔터가 내려질 때까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38년의 역사를 가진 이세탄백화점 기치조지점이 이날로 문을 닫았다. 한 중년 여성은 “기치조지역 상가 중심부에 위치한 이세탄은 이 동네의 상징이었다. 어릴 적부터 애용한 백화점이 사라진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이세탄과 같이 적자를 견디지 못해 문을 닫는 일본 백화점이 늘고 있다. 특히 1960~70년대 ‘백화점 거리’로 개발된 기치조지는 이제 그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74년 이 지역에 세워진 긴테쓰(近鐵)백화점은 2001년 가장 먼저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 미쓰코시(三越)백화점이 입주했으나 이 역시 2006년 물러났다. 지금은 가전제품 대리점인 요도바시카메라가 입주해 있다. 지난해 말에는 도쿄 긴자(銀座)의 랜드마크인 세이부(西武)백화점 유라쿠초 매장이 폐점했다.

일본의 백화점 점포 수는 99년 311개로 정점에 달했다. 이후 해마다 줄어 지난해 말 기준으로 271개가 남았다. 이세탄 기치조지점을 포함해 올해에만 10개의 백화점이 문을 닫는다. 일본 백화점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백화점 매출은 전년 대비 10.1% 감소한 6조5842억 엔(약 82조44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 감소 추세는 13년째 이어지고 있다. 수년 안에 5조 엔 이하로 매출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 백화점의 부진은 장기불황의 영향이 가장 크다. 소비자들은 값싼 물건을 찾는데 백화점들은 명품과 같은 고품질·고가격 정책을 고수했다. 백화점들은 살아남기 위해 상시 할인 세일을 하거나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고객들의 발길을 돌리는 데는 역부족이다. 중저가 패션 매장들이 백화점이 물러난 자리를 차지하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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